제주 겨울

by 진경환

어느 해 겨울 추사 적거지 주차장에서 발이 묶인 적이 있었다. 그야말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차에 들어앉아 있어야만 했다. 햇볕 쨍한 대낮,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우울이 극을 향해 치달았던 것 같다.


그 전 해, 아마 표선의 어느 바닷가였을 게다. 밤바다를 마주보고 전조등을 켠 채로 부서지는 파도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땐 그리 외롭지 않았다. 혼자여도 견딜 만했다.


다시 그 전 해, 용눈이오름에 올라 달 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은 모질고 사나웠다. 외로워할 틈이 없었는데, 터덜터덜 내려오는 길에 묵직한 것이 목울대를 짓눌렀다.


언제인지 잊었는데, 눈이 내리다가 그친 오후 물영아리오름 나무계단을 미끄러지면서 오르고 또 올랐다. 아무도 없는 삼나무 숲 적막 속에 내 호흡소리만 거칠게 들려왔다. 정상의 습지를 보는 둥 마는 둥 황급히 내려왔다. 갑자기 무서움이 밀려왔던 것이다. 다 내려와 차에 앉아 외투를 벗는데 안경에 김이 흠뻑 적셔졌다.


또 언젠가는 거문오름을 내려와 어느 길목에서 쎄고 거친 바람을 대책 없이 맞아야만 했다. 오름 입구로 돌아오는데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눈발이 몰아쳤다.


이번 겨울엔 어느 모퉁이를 홀로 돌아보려 하는가. 돌아보기나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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