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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Apr 30. 2024

약포(藥舖)


조선 시대 약방이다. 조선 후기 야담집인 <청구야담(靑邱野談)>에는 약포라 해서 단순히 약만 파는 데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구리개의 어느 약포에 어느 노학구(老學究)가 찾아온다. 그는 수개월 동안 약국에 앉아 있으면서 약을 구하는 자가 있으면 옆에서 병에 상관없이 무조건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 세 첩을 지어가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그때마다 신기하게도 효험을 보았다. 나중에는 임금도 그의 곽향정기산을 먹고 병이 나았다. 이 이야기의 말미에 기록자는 이런 평을 달아놓았다.


"그는 이인(異人)이다. 대개 의서(醫書)에 의하면 시운(時運)이 순환하는 그러한 시기에 백 명이 발생하여 증세가 다르더라도 그 근원은 연운(年運)에 의함이라 하겠다. 참으로 연운을 잘 알아서 거기에 맞는 약을 쓰면 맞지 않는 증세에 대해서도 모두 효험을 보는 것이다. 근래 의업(醫業)을 하는 자들은 이러한 이치는 통 모르고 단순히 증세만 좇아서 약을 쓰려고 하니 지엽을 다스리느라 근본을 잃는 격이다. 이리하여 맹랑하게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병인(病因)을 찾으려 하지 않고 증세만 좇아 임시적으로 치료하는 당시의 대증요법에 일침을 놓고 있다. 거기에는 세상이 병이 들었으니 사람들도 따라서 병들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 개인의 병은 증세가 달라도 시운(時運)과 연운(年運)에 따라 생기니, 우선 세상을 좀 바르게 고치려는 자세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사진 : ‘신농유업(神農遺業)’이라고 써붙인 약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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