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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May 23. 2024

잡설 '명실상부(名實相符)'  


이름과 실상, 곧 겉과 속이 서로 꼭 맞는다는 말이다. 세상의 범인(凡人)들이 어찌 그렇게 살 수 있겠냐마는 가능한 한 그 간격은 좀 줄이려고 노력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김시습은 불가의 오랜 전통에 기대 <화엄석제(華嚴釋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경계는 있는 것[有]도 아니고 비어있는 것[空]도 아니다. 이치[理]도 아니고 일[事 ]도 아니다. 하나[一]도 아니고 많은 것[多]도 아니다. 작지도[小] 않고 크지도[大] 않으며, 길을 헤매는 것[迷]도 아니고 찾은 것[悟]도 아니다. 닦는 것[修]도 아니고 깨달은 것[證]도 아니다. 부처의 경계[佛境界]라고 해도 좋고 아니라고 해도 좋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길을 헤매는 것[迷]도 아니고 찾은 것[悟]도 아니다”에서의 “미(迷)” 자이다. 어지럽게 여러 갈래로 갈라져 일단 들어가면 드나드는 곳이나 방향을 알 수 없게 되어 있는 길을 미로(迷路)라고 할 때의 그 글자이다.


연전에 “미로(迷路)”를 자호로 삼은 사람을 알고 있었다. 호가 너무 멋들어지거나 엄숙하면 보기 민망할 때가 있다. 그래서 대개 자기가 살던 곳을 따서 쓰는 게 일반적이다. 퇴계(退溪)니 율곡(栗谷)이니 연암(燕巖)이니가 그렇다.

.

“미로”를 자호로 쓴 이는 아마 자기가 대단히 겸손한 사람임을 그렇게 드러내려고 한 것 같다. 그런데 거기에는 이미 “나는 대단히 지혜로운 사람이다”라는 자만이 전제되어 있다고 하면, 좀 과한 평가인가? 내가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미로”가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는데, 그는 실제로 그랬기 때문이다. 참고로 사건이나 문제 따위가 복잡하게 얽혀서 쉽게 해결하지 못하게 된 상태를 비유적으로 말할 때 “미궁(迷宮)”이라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이는 명과 실이 상부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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