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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May 24. 2024

실수인가, 착각인가

제주 관덕정 창방 아래에는 총 8개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그중 ‘여자들이 어느 남자에게 귤을 던지는 장면’이 있다.(그림 1) 그 그림 제목을 “취과양주귤만헌(醉過楊州橘滿軒)”이라 했다. 술에 취해 양주를 지나가는데 귤이 수레에 가득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림에는 “醉過楊州橘滿車”로 되어 있어 이상하다고 했다. 그런데 ‘헌(軒)’이나 ‘거(車)’는 같은 말이다.


두목(杜牧, 803~852)이 술에 취해 양주(揚州)의 청루(靑樓) 거리를 지나니, 기녀(妓女)들이 던진 귤이 수레에 가득 쌓였다는 고사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고사를 몰라도 그림을 보는 데 지장은 없으나, 알고 보면 더욱 잘 이해될 수는 있겠다. 


'양주'는 한 나라 이래로 청 왕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시대에 걸쳐 경제적, 문화적인 번영을 이룬 고장 양저우이다. 그림에 ‘양주(楊州)’로 되어 있는 것은 ‘양주(揚州)’로 고쳐야 한다. 두목의 시 <견회(遣懷)>에서 저 유명한 ‘십년일각(十年一覺)'이라는 말을 나오게 한 바로 그곳이다.


시는 이렇다. “강호에 낙백하여 술 싣고 다니면서 / 개미 허리 살결 고운 미인들과 놀았도다 / 양주의 꿈결에서 10년 만에 깨어보니 / 풍류객 뜬 이름만 청루에 남았구나(落魄江湖載酒行, 楚腰纖細掌中輕. 十年一覺揚州夢, 贏得青樓薄幸名)”


그런데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제주편):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창비, 2012)에서 이 시와 고사를 두보의 것으로 적었다.(그림 2) 그리고 엄밀히 말해 저 그림들은 벽화가 아니고 창방 아래 그려진 것이다.(그림 3) 이것은 단순 실수인가, 아니면 착각인가?


덧. 유홍준 덕분에 인터넷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관덕정을 소개하는 공식 사이트에서도 저 시의 저자(화자)와 그림의 인물은 두보가 되었다.(그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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