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남을녀, 장삼이사, 필부필부(匹夫匹婦).....다 보통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대개 사는 데 바쁘고 힘이 들어 정의롭게 살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치사하지 않게 살려 해도 여의치가 않다. 오랫동안 그렇게 살다 보니, 글자 그대로 어리석고 가여운 우부우부(愚夫愚婦)가 되어 한심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 생각에 더욱 한심한 자들은, 너절하고 너저분한 지식분자들이다. 온갖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럴 듯하게 떠들어대면서, 실제로 사는 건 지저분하기가 이를 데 없는 자들이다. 이들은 머릿속과 몸뚱아리는 함부로 걸레처럼 하고 다니면서도, 인성이니, 공동체니, 선행(善行)이니, 미풍양속이니, 윤리도덕이니, 대의명분이니, 온갖 겉치레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닌다.
무엇보다도 진보를 자처하면서 한낱 특정인을 지지하고 그에게 욜광하는 일, 다시 말해 특정 진영을 지키고 확대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걸 문제삼는 이들을 배척, 고립시키고 나아가 억압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살아간다.
그들은 프란츠 파농 같은 것이야 읽어볼 생각조차 안 했겠지만, 그래서 이게 무슨 말인가 의아해 하겠지만,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한 구절을 보인다.
"흑인이 백인 세상과 접촉할 때는, 아주 민감한 반응이 일어난다. 만약 정신구조가 박약한 흑인이라면, 그 자아는 붕괴되고 만다. 그 흑인은 실천적 개인으로 사는 것을 포기한다. 이제부터 그의 폭표는 (백인의 허울을쓴) 타자가 되는 것이다. 오직 타자만이 그에게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나는 내가 아니다>, p.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