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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Feb 15. 2023

자연재해 앞에선 사람은 작아진다

내가 온몸으로 느꼈던 지진.


6년 전쯤에 포항에서 큰 지진이 났을 때 바로 옆 지역에 살고 있어서 온몸으로 지진을 느꼈다.

처음엔 지진인지 몰랐다. 하지만 비상벨 소리와 안내방송을 듣고 어떤 정신으로 아파트 일층으로 내려왔는지 모른다. 거실에 있던 액자가 바닥으로 떨어져서 깨졌고 집이 흔들리는데 이러다가 무너지겠다는 생각에 아파트가 움직이는 순간 얼음처럼 서 있었다.


"비상계단으로 얼른 내려 가자. 엄마 잠깐 차키랑 지갑 좀 챙기고."

"엄마 엉엉 어찌해요. 우아앙"

"엄마 손 잡아."


큰아이는 내 손을 잡고 둘째 아이는 들쳐 안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같은 라인 사람들도 하나둘씩 아이들을 데리고 계단으로 내려왔었다. 다행히 우리 집은 9층이라서 고층에서 내려오는 친구들보다는 수월 했지만 둘째 아이가 45개월쯤 되었기에 일층까지 내려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랑은 회사에서 집으로 오는 중이었고 신랑과 같이 근처 공원 주차장으로 대피했다. 지진에 대한 기본 상식도 없었지만 여진이 더 있을 시를 대비해서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차에서 히터를 켜고 한참을 보내고 아이들을 진정시킨 후에 실시간 뉴스를 듣고 집으로 들어가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들어왔었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제일 먼저 우리 가족은 비상 가방을 챙겼다. 일명 생존가방이라고 하는데 작은 배낭을 꺼내서 생수, 초콜릿, 아이들 여분옷, 여권, 현금, 캔음식, 타이레놀 같은 것을 넣고 현관 앞에 두게 되었다. 그 뒤로도 느낄 수 있는 지진이 두 번쯤 더 있었기에 그때는 그 가방을 들고 다시 공원에 갔던 기억이 있다. 아파트가 내진 설계가 되어 있다지만 29층 아파트는 지진이 나면 옆으로 흔들렸다. 그 뒤로 나는 고층에서 살지 못한다. 고층에 올라가면 공포가 생긴다. 어찌 내려가야 할지 고민부터 하게 되고 동선을 파악하는 습관이 생겼다. 중국에 와서도 집을 구하는데 신랑에게 저층을 외쳤다. 여기는 40층까지 있는 아파트라서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구한 집이 4층이다. 10층 아래로 집을 구하느라 엄청 애를 먹었다.






튀르키예 지진이 난 후 며칠간 사진과 뉴스를 볼 수 없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난 후에야 인스타 그램이나 릴스에 뜨는 사진을 보고 뉴스를 접했다. 처참한 사진에 할 말을 잃었고 한 명이라도 더 구조되길 바랐다.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없나 생각을 했지만 기부라는 방법 밖에 떠오르지 않아서 기부를 조금이나마 했다. 옷가지나 생필품도 보내고 싶었지만 이곳 중국에서 보내는 방법을 몰랐다.


아이들도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시나 보다. 학교를 다녀오면 튀르키예 상황과 어찌 사람들이 구조되고 있는지 한참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지진 났을 때 공터에서 시간을 보냈던 기억도 이야기하며 자연재해 앞에서는 사람이 한없이 작아진다고 이야기를 했다.



글을 쓰며 생각하니 좋은 환경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가족과 함께 있음을 새삼스럽게 감사하는 밤이다.

모든 사람들이 따뜻한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 얼른 한 명의 사람이라도 더 구조되길 바란다.  




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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