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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Jun 18. 2023

아무리 언어가 변한다고는 하지만 떼는 적당히 씁시다.

그거랑 그거랑 같냐고요. ^^;;

제목이 다소 도발적인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바래다'와 '바라다' 때문이다.




워낙 많이 틀린 것으로 알려진, 그러나 여전히 교정되지 않고 있는 어휘가 있다. 그 대표격인 단어가 바로 저 '바라다'와 '바래다'다.


나는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예전부터 바른 국어 생활을 위해 꽤나 노력해 왔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중고등학교 국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번쯤은 해 봤을 텐데, '대한민국'의 표준 한국어는 그 규칙이 지나치게 복잡한 나머지 머리에 쥐가 나게 하는 경우가 꽤나 많아서 간략화 조치가 절실하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조선시대만 봐도 이어쓰기를 한데다(이는 절대적으로 한문의 영향 탓이다) 저 군사분계선 윗동네만 하더라도 띄어쓰기에 이렇게 엄격하지는 않다고. 근데 왜 유독 여기만 이렇게…?


그렇긴 하지만, 국가적으로 표준어가 제정되어 있고 이에 맞추어 '한국어 어문 규범'이란 이름의 표준어 규칙이 제정되어 있으니 이를 맞추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뭐, 그렇다고 이를 안 지킨다 하여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언어의 가변성 이상으로 언어의 역사성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을 고려하면, '내 맘인데 뭐 어떠냐' 식으로 나오는 건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이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그렇지만, 외국인에게도 잘못된 언어 습관을 형성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면서 저 언어 습관이란 것도 변한다지만, 무작정 변하는 것은 아니며, 어느 정도의 경향성이나 틀이 존재한다. 이를 막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옛날에도 크게 다르진 않았겠지만, 요즘에는 워낙 맞춤법을 잘 안 지키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책을 읽어도 이게 도대체 뭔가 싶은 경우가 제법 있다. 교수라는 이들도 한국어로 문장을 쓴 것인지, 아니면 그저 한국어로 옮겨 놓았을 뿐인 외국말을 구사하는 것인지 의심될 정도로 가독성 떨어지는 글을 쓰는 경우가 많으며, 전업 작가로 활동하는 이들조차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아 더는 책을 통해 바른 문장을 습득한다는 것이 상당히 어려워진 상황이다.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마저 이러니, 언중(言衆)이 제대로 된 표현을 사용할 리 만무하다. 오죽하면 아예 본인들의 무지함으로 잘못된 어휘를 사용해 놓고는 "다수가 이렇게 쓰니 표준어로 제정해 줘!"라는 매우 황당하고 비상식적인 요구를 하는 경우가 꽤나 많은데, 국립국어원 근무자들이 이런 사례를 접할 때마다 얼마나 귀찮을까 싶다. 뭐, 그들에겐 비일비재하게 있는 일이라 이젠 별 감흥도 없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여러 단어가 복수 표준어로 인정돼 왔고, 이것이 언어의 가변성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바라다와 바래다 또한 동일한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복수 표준어로 인정된 어휘와 같은 양상이라고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흔히들 '끄적이다'라고 하는 이 말은 원래 표준어가 아니었'끼적이다'가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다들 끼적인다고 안 쓰고 끄적인다고 쓰다 보니 인정된 경우인데, 비록 끼적인다는 말이 변형된 것이긴 했지만 애초에 '끄적인다'란 동사가 따로 존재하여 사용돼왔던 것 아니었므로 언어의 의미 체계가 교란될 소지가 없었다. 그저 어쩌다 보니 '끼'가 '끄'가 됐을 뿐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의 요구에 맞추어 복수 표준어로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거치적거리다'가 본래 맞는 말이었지만 사람들이 '걸리적거리다'라는 말을 쓰다 보니 이 또한 복수 표준어로 인정된 사례와 같다.


자장면과 짜장면도 유사하다. 애초에 자장면이란 말은 중국어 작장면炸醬麵에서 왔고, 이를 최대한 중국어 발음과 유사하게 쓰면 '쟈지앙미엔'이다. 즉 외래어인 것이다. 비록 외래어 표기법이 존재하긴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외래어 표기법이야말로 이게 정말 원어에 가깝게 만들어진 표기법인지 의심이 들 때가 너무 많다. 당장 내 전공 언어인 중국어의 외래어 표기법만 하더라도 중화인민공화국의 한어병음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데, 한어병음은 한자를 알파벳으로 표기하기 위해 고안된 체계로, 그네들 입장에서는 가장 간단하면서 효율적인 표기법을 만드려다 보니 표기와 실제 발음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경우가 제법 있다.

예를 들어 모일 회會 자가 한어병음으로는 Hui라서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이를 '후이'라고 옮기는데, 실은 ui가 아니라 uei라서 '후에이' 또는 '훼이'로 써야 본음에 가깝다. 그런데 이를 온전히 고려하지 않다 보니 그저 '저 사람들이 '-ui'라고 표기하니까 우리도 그냥 그렇게 해야지' 하고 만들어진 게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라서 당연히 원어와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일본어의 경우도 마찬가진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현재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일본 가부키쵸의 '유흥업 종사자' 다나카 유키오 씨를 연기하는 개그맨 김경욱는 본래 다나카가 아니라 '나카'며, 저 '가부키쵸'란 지명도 정확히는 '부키쵸'다.

또한 예전엔 풍신수길(豊臣秀吉)이라 불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저 앞의 '도' 자는 본래 '토' 자로서, '요토미 히데요시'라고 해야 맞는다. 대체 왜 이런 식으로 문제투성이인 외래어 표기법을 제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잖은 결함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니 저 자장면의 경우에도 실제로는 무조건 자.장.면.이라고 발음해야 한다는 것에의 근거가 부족했던 상황에서 사람들이 하도 '짜'장면 '짜'장면 거리다 보니 결국 복수 표준어로 인정이 된 것이다.

유흥업 종사자 겸 유튜버 '타'나카 유키오
조선 침략의 원흉, 그러나 일본 통일의 주역이기도 한 '토'요토미 히데요시

▲본래 발음대로 불리지 못하는 두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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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저 바라다와 바래다는 완전히 다른 경우다. 이미 '바라다'라는 동사와 '바래다'라는 동사가 형태만 비슷할 뿐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닌 동사로 예로부터 사용되어 왔으며, 상호 호환되지도 않았다. 혹여 '바래다'라는 동사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바라다'라는 말을 '바래다'라고 잘못 써 왔다면 인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그런 일은 있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이런 논리라면 '바라다'의 한자어인 '원망(願望)하다'와 누군가를 탓한다는 뜻의 '원망(怨望)하다'의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두 단어가 마치 하나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정해달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데, 아무리 발음이 유사하다지만 엄연히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는 두 단어를 어떻게 같은 뜻을 담은 말로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건 언어는 변하니 인정해야 한다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생떼를 쓰는 것에 불과하다. 언중의 무지함으로 인해 잘못 형성된 언어 습관을 '다수가 그렇게 한다'는 이유로 인정해달라니, 이게 무슨?


결정적으로 바라와 바래를 혼용하는 것도 '바라다'의 어간인 '바라-'에 어미 '-아'나 '-요'와 같이 초성이 'ㅇ'으로 시작하는 어미인 경우에 국한다. 즉 모든 상황에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란 말씀. '바랍니다'와 같이 어미가 자음(ㅂ)으로 시작하는 경우엔 절대 '바랩니다'를 사용하지 않는다. 만약 '바래'를 '바라'의 의미로 인정한다면 '바라-'와 결합하는 모든 형태의 활용형이 죄다 '바래-'가 된다는 말인데, 살면서 '바랩니다'란 말을 사용한 사람을 본 분 계시다면 말씀 남겨주시길 바란다. 하물며 '내일 오전 9시까지 OO건물 앞으로 집결하기 바람'과 같이 저 '바람'이란 명사형도 멀쩡히 사용되고 있는 판에, 대체 무슨 '바램'을 인정해달라는 것인지?


이는 어린아이가 마트에서 장난감 사달라며 구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처사다.




명확히 하건대 나는 국립국어원과 그 어떤 이해관계도 없으며, 주변에 국어학자라고는 단 한 사람도 없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언어가 변한다는 이유로 무작정 원형이 아닌 변형이 인정될 수는 없는 것이다. 법 개정이란 것도 나름의 절차와 과정이 있고, '맥락'이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고려하는 마당에, 이건 뭐 맥락도 없는 상황에서 그저 사람들이 많이 쓰고, 형태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아예 다른 의미인 두 단어를 하나의 뜻인 것처럼 인정해 달라는 것은, 순전히 무지에서 비롯된 오류일 뿐임을 말하고자 한다.


잘못된 습관도 한두 명을 넘어 수백, 수천, 수만, 심지어는 수백만 명이 갖고 있으면 '다수 논리'에 의해 맞는 게 되버린다. 결국 문제는 이 '다수 논리'다. 다수 논리가 다 맞는 것이 아닌데, 사람들은 다수의 동일한 행동 양상이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고 착각한다. 이는 아무래도 그놈의 '다수결의 논리'가 빚어낸 오류이자 일종의 참극(?)일 것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더 친숙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많이들 쓴다는 이유로 틀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언어 사용'에 있어서 명백히 잘못된 행위다. 올바로 쓴다고 누가 상을 주는 것도, 틀리게 쓴다고 누가 벌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위의 외래어 표기법 사례와 같이)불합리한 점은 확실히 지적하되, 무지에 의한 오류는 수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문화 시민'으로서의 성숙한 자세가 아닐까 한다. 안 그래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올바르게 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데, 이를 반성하기는커녕 외국 사람들이 간단한 사칙연산도 못 하고, 지도를 보고 이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맞추지도 못한다는 이유로 무식하다 비웃기 전에 먼저 나(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태도를 갖춰야 하겠다.


…솔직히 자기네 나라 지도 모양(뒤집힌 채로 제시되었다곤 해도…) 보고도 어느 나라인지 못 맞추는 건 경악스럽긴 했으나, 너무 당당히 틀린 걸 맞는 것처럼 말하는 걸 보면, 여기나 저기나 정도 차이만 있지 매한가지라서 도무지 사돈 남 말 할 처지는 아닌 듯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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