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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Sep 04. 2023

홍범도 장군 동상 이전 논란에 대한 평

한 망령이 대한민국을 맴돌고 있다. '반공주의'란 망령이.

나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이 우익의 나라로 시작했다는 몇몇 사가(史家)들의 입장에 동의한다. 좌익 세력은 해방 공간 시기와 6.25 전쟁을 통해 당시로서는 대한민국에서 사실상 소멸했기 때문이다. 물론 후에 좌파 세력이 독재 정권에 반해 역사 전면에 등장하기는 했으나, 대한민국이란 국가 자체가 국가주의 우익의 주도하에 수립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민족주의 우익은 해방 공간 시기에 소수가 암살당한 후 전쟁 시기에 대거 납북당하여 맥이 끊기다시피 했다.). 전시(戰時) 국민보도연맹 가입자를 포함한 양민 대상의 무차별적 학살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고, 반공주의 광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전향자'라고 알려진, 한때 조선공산당 등에서 활동한 죽산 조봉암이 이승만에 의해 사법 살인을 당한 것도 대한민국의 성격과 관련된 사건이다. 그 당시에는 공산주의가 실체적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었기에 과도한 레드 콤플렉스가 발현하는 것이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 정부가 '빨갱이 딱지'를 붙이며 여러 개인과 집단을 대상으로 벌인 생명 탈취 사건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웃긴 것은, 이를 정당화하는 이들이 그 누구보다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한다는 점이다.


21세기를 흔히 '탈이념 시대'라고 하지만, 이는 명백히 잘못된 표현이다. 인류 사회에서 국가 개념이 등장한 이후로 이 '이념'이란 것은 단 한 번도 인간의 곁을 떠난 적이 없다. 그저 이념에 무관심한 시대가 되었다는 뜻으로 탈이념 시대라는 표현을 쓰는 것 같은데, 여전히 정치와 사회, 문화 각 방면에서 이념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신의 이념이나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뭐, 화장실 가서 볼일 보는 것까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측면에서 말만 탈이념 시대인 이 21세기 하고도 23년째인 현재, 대한민국은 현 정부의 주도 하에 '홍범도 지우기' 작전을 펴고 있다. 누군가는 이에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엔 홍범도 지우기라 칭하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이다. 처음에는 육사에 설치된 5인의 동상을 모두 옮기겠다고 하더니, 여론이 안 좋아지니 '공산주의 전력'을 지닌 홍범도 장군 동상만 육사 경내에서 빼고 다른 동상은 육사 경내 다른 지점에 재배치하겠단다.


참,

어이가 없어서.




역사가 보여주듯 공산주의 사회 건설 시도는 실패로 끝이 났으며, 현존하는 공산주의 국가의 하나라는 중국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는, 말은 그럴듯하나 사실상 중국이 자본주의적으로 운용되는 일당독재 국가임을 감추는 표현을 사용하며, '북한'이라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사회주의 운운은 하지만, 그들의 지배 이념은 '김일성-김정일주의' 즉 '주체사상'으로 공산주의 사회를 지향하지 않는다. 비엣남(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도, 쿠바 공화국도, 라오스 인민 민주 공화국도 말이 공산주의 국가지 실제로는 당을 운용하는 소수 엘리트에 의해 돌아가는, '공화정'일 수는 있어도 '민주정'은 절대 아닌 그런 곳이다(쿠바공산당의 영수였던 피델 카스트로는 군주가 아닌 지도자로서는 최장기 집권이란 대기록을 남겼다.).


나는 개인적으로 공산주의가 싫다. 공산주의는 '선한 인간관'을 전제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폭력'과 '투쟁'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이미 위선적인 이념이다. 스탈린이 공산 사회 건설을 위해 대숙청을 벌인 것도, 마오쩌둥이 중국의 사회주의화를 위해 소위 문화대혁명을 자행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고자 이념의 껍데기만 빌려다 썼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좋은 것도 아니다. 사람이 생업을 위해 노동 현장에 뛰어들거나 자영업을 하는 건 그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지 '자본주의적 현상'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하나의 거대한 경제 이념이다. 수많은 국가가 자본주의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자본주의 이념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그러므로 모든 개인은 자본주의의 영향력 하에 있다. 다만 자본주의 교묘하게 사람의 인식 체계를 장악해 왔다면 공산주의는 이를 대놓고 이식하려 했다는 점이 차이다. 자본주의 기존에 사람들이 살아 왔던 체계에다 이를 덧씌웠을 뿐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기존에 없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이어져 오던 사회 시스템을 갈아치웠다. 두 이념 다 피해자와 희생자를 내 왔지만, 공산주의의 경우엔 자본주의와는 (질적으로는 몰라도) 양적으로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사망자를 냈다. 공산주의 경제 체제가 실패해서가 아니라, 공산주의 이념의 강요 과정에서 수많은 민중이, 그리고 지식인이, 심지어는 당(정부) 관료가 썰려나갔다. 그토록 마오쩌둥에게 충성했던 린뱌오(林彪)도 1971년에 중국에서 타지로 망명하던 도중 비행기 폭발 사고로 죽었고, 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다는 저우언라이(周恩來)는 말년에 암으로 고생했으나 마오쩌둥의 방해로 인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고 알려졌다. 트로츠키는 어떠한가? 레닌에 의해 차기 소련공산당 지도자로 낙점된 그는 스탈린의 권력 선점으로 인해 조국에서 추방당한 후 객지에서 끝내 암살당하고 말았다. 트로츠키주의는 하나의 정립된 이념 체계라 할 수 있으나 스탈린주의는 그런 거 없다. 그냥 맘에 안 들면 죽이고 밀어내고 유배 보내는 게 전부다.


이렇듯 공산주의자라는 이들의 '죄상'을 따지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러나 내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공산주의자들의 악행을 고발함으로써 그들이 역사에서 지워지도록 갖은 수를 써야 한다는 게 아니다. 비록 역사적으로 이런 참혹하고 잔인한 처사가 분명 있긴 했으나, 왜 그걸 홍범도 장군과 연결하려 드느냐는 것이다.




역사를 완전히 우파 사관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공산주의'와 관련된 모든 것을 비판과 비난의 대상으로 상정한다. 이념으로서의 공산주의와 현실로서의 공산주의를 완전히 동일시하며, 홍범도 장군과 같이 '공산주의' 또는 '공산당'과 관련된 인물이나 집단이라면 무조건 죄악시한다.


그러나 홍범도 장군은 널리 알려져 있듯 1943년에 카자흐스탄에서 생을 마쳤다. 당시 연해주, 현 러시아 극동 지방을 근거지로 활동했던 그가 왜 그토록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서거했을까? 이는 제국 일본을 경계한 스탈린이 소련 영내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을 소련 안보에의 잠재적 위협 요소로 간주하여 소비에트 남부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킨 것이 그 이유다. 아무리 홍범도 장군이 공산주의와 관련이 있고, 레닌에게 권총을 선물로 받았다 해도 그는 공산주의의 심장부와도 같았던 소비에트 연방, 그리고 그곳의 지도자인 스탈린에 의해 연고도 없는 곳에 끌려가 광복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대체 그런 그를 왜 이제 와서 건드리는 건가? 육군사관학교와 '대한민국 국군'의 창립 이념과 맞지 않아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럴 거면 대한민국 현행 헌법에 규정된 '임시정부 법통'이란 문구도 지우고, 홍범도 장군의 유해도 그가 묻혔던 카자흐스탄에 재송환하든지, 아니면 그의 고향인 저 북조선 지역으로 보내라. 현 정부의 논리에 따르면 대체 왜 공산주의 운동 전력자의 유해를 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현충원에 안치해야 하는가? 하등 그러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국방부의 입을 빌려 홍범도 장군의 과거 전력을 문제 삼으며 그를 국군의 맥에서 지우려 하고 있다. 그렇게 따지면 이회영 선생은 아나키스트, 즉 무정부주의(사실 무정부주의란 말은 널리 쓰이는 말이긴 하지만 그 사상의 내용을 고려하면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이에 대해선 아나키즘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길 권한다.)자였는데, 공산주의보다 더 위험한 것은 국가도 정부도 부정하는 무정부주의가 아닌가? 그런 그의 흉상은 왜 경내에 남겨 두고 굳이 홍범도 장군 흉상만 옮기려는 것인가?


공산주의가 싫은 건 싫은 것이다. 개인의 자유도 있거니와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이는 이해하고 또 인정한다. 그런데 공산주의와 저 이북 정권은 다르다. 5-60년 전만 해도 공산주의와 북괴는 동의어였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서 북한이 공산주의 국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저 그렇게 교육을 받았으므로 별 생각 없이 말하는 것이거나 실제로 북한이 공산주의 국가라고 믿기 때문에 그리하는 것이다. 북한이 진정 공산국가인가? 공산주의는 일인숭배 따위 허용하지 않는다. 원칙대로라면 마오쩌둥과 호치민의 시체는 진작 불살라 물에 뿌려지거나 땅밑에 묻혔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시신이 여전히 모 기념관에 각각 안치되어 있는 것은 해당 국가가 공산주의의 이론을 온전히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북한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은 블라디미르 레닌, 심지어는 칼 막스('카를 마르크스')나 프리드리히 엥겔스보다 위대하며 역사 인물을 통틀어서도 그 어떤 비교도 허용될 수 없는 불세출의 영웅이다. 이딴 국가가 무슨 공산주의 국가라고 이렇게 레드 콤플렉스를 떨어 대는 건지…현 정부의 역사 인식이 대체 어느 시절에 머물러 있길래 대통령실이고 국방부고 공산주의 타령을 하나 싶다. 이를 한심스럽게 여기지 않으면 뭘 한심스럽게 여겨야 하나?


현상적으로 군대에서는 멸공을 구호로 삼고 있다. 그러나 현상적으로 그러하다는 것이지 현실적으로는 매우 시대에 뒤떨어진 얘기다. 대한민국 국군의 주적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인민군인 것은 틀린 얘기는 아니나,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라고 일컬어졌던 소련도 망한 지가 30년이 넘었고, 현존하는 공산주의 국가는 무늬만 공산주의지 사실상 과두정체를 채택했을 뿐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멸공 반공 운운하는 것, 그리고 그리하는 이들을 보면 나로서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자본주의적 사관(史觀)에 따르면 공산주의는 역사적으로 이미 패배했다. 더군다나 멸공을 운운한다 한들 저 조선노동당 정권을 무력으로 붕괴시킬 수도 없다. 통일을 부정하는 것과 침공을 감행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문제임을 진정 알기는 하는가? 두 가지 다 헌법에는 위배되지만, 침략 전쟁을 부인한다는 조문을 무시하고 이른바 '북진'을 감행할 경우 대한민국의 위상은 땅바닥에 떨어지고, 안보리 제재를 받는 비참하고 가련한 처지가 되고 만다. 그런데도 무슨 멸공 타령인지 모르겠다. 애초에 북한은 '북한'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DPRK로 유엔에 가입한 국가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서 그저 공산주의 어쩌고 하는 이들은 나라를 거꾸로 돌리려는 수구, 반동 세력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대한민국이 기본적으로 우익의 나라로 출발했다는 몇몇 사가의 주장에 동의한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 나라엔 아직까지 공산주의의 망령이 배회하고 있다. 그리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공산주의를 실체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근본적인 적은 더는 북괴도 북한도 조선도 아닌 사회·문화적으로 뿌리깊게 내려온 서열주의와 집단주의, 그리고 실로 국가 존망의 위기인 저출산 문제이며 이를 직접적으로 야기한 수도권 중심주의와 학벌주의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이젠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어떻게 할 생각도 않으면서 아직까지 공산주의 타령이나 하고 있는 이들과 '현 정부'…. 어떻게 하면 만족하려나 싶어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들의 논리와 인식에 따르면 이런 나조차 용공분자이니 없애는 것이 자유대한민국을 위해 당연한 선택일 텐데, 나의 신념과 입장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이를 제거하는 것은 전체주의다. 히틀러의 유대인과 집시 등 민족 학살과 다를 바 없는 집단 살해의 용인이다 이 말이다. 저출산이 문제라면서 정작 한국 정치를 좌우하는 거대 양당 중 하나인 특정 정당을 공산당이라 지칭하며 그 정당과 지지자들을 없애야 한다는 건 대체 무슨 논리인가? 안 그래도 사람이 없어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는데 투표자 중 절반에 필적하는 이들을 죽어 없애면 뭘 어쩌자는 것인가?


나는 한국 우익 세력의 인식이 잘못되도 한참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현 정부가 대표하고 있다. 진짜 위기가 무엇인지 파악도 진단도 못 하면서 가상의 적을 상정, 이를 위해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려는 전체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들이 여전히 군사독재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과거에 머물러 있음을 증명하는 것과 다름없다. 한국 좌파가 민족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지금 당장은 그들보다 아직까지 정체불명의 '공산전체주의'에 묶여 있는 한국 우파가 더 문제다. 대한민국은 6.25 발발 이후 권위/전체주의와 완전히 결별할 수 없는 역사·정치적 토양 위에 있다. 그것도 인지하지 못하면서 대체 무슨….


저들을 어찌할 수 없어서 문제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에서는 상대 정파를 물리적으로 제거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기에, 얼마 안 되는 극렬한 투쟁의 장인 역사와 정치에서 이런 분란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서 더욱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대체 이 나라는 어디로 가려는가?





대표사진 출처 : https://imnews.imbc.com/news/2023/politics/article/6518323_361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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