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선 왜 정부의 방역 정책을 비판하지 않을까?
결론만 놓고 말하면, '그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에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지도 어언 2년 4개월째다. 몇 차례의 대유행이 있었고, 그때마다 감염자는 폭증했다. 사람들은 그럴 때마다 방역의 고삐를 죄어야 한다고 외쳤고, 실제로 정부는 그렇게 했다. 이로 인해 사회에 누적된 폐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에도, '확진자가 여전히 나오는데 어떻게 방역을 하지 않을 수가 있느냐'며 절대다수가 방역 지속을 외치고 있다. 사실 이는 한국인이 '언젠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종식될 것'이란 희망을 품고 있기에 일어난 일인데, 정작 시기가 거듭되며 바이러스 사태가 종식될 것이란 전망은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고, 다수가 백신을 접종하기만 하면 '집단면역'이 형성되어 사태가 해결될 것이란 장밋빛 청사진조차 무의미하게 됐다. 그것이 실제로 개개인의 면역을 높여주었느냐는 의문은 차치하고서, 애초에 집단면역이란 것이 다수가 백신을 맞아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더라면 그런 주장은 제기돼선 안 됐다. 하지만 이른바 '방역/의학 전문가'들은 전 국민의 70%만 백신을 접종하면 집단면역이 형성될 것이라 단언했고, 이는 너무나 우습게 깨졌다.
이쯤 되면 언론에서 정부의 방역 정책에 의문을 제기해야 했다. 왜냐, 일단 집단면역이란 것이 허상임이 밝혀진 데다 한국인의 90%에 근접한 1-2차 접종률을 고려할 때 도입할 필요가 없었던 '방역패스'란 같잖은 제도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피트니스 센터에서 트레드밀(러닝 머신)을 사용할 때 시속 6km 이상 뛰거나 걷지 못하게 하는 이런 비상식적인 지침을 내렸던 것을 고려하면 단지 이런 세부사항을 비판할 게 아니라 '과연 현 방역 체계를 지속하는 것이 맞느냐'에 대한 의견을 제기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왜냐? 뻔하다. 그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언론은 방역 유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없다. 그러니 매번 신규 감염자, 위중증 환자 및 사망자 수치만 받아 적은 것이다. 만약 내 주장이 틀렸다면, 혹여 이 글을 보는 언론인이 있다면 반박해주길 바란다. 지난 약 3년간 언론에서 한 일이라고는 중대본 및 질병관리청(한때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하는 것을 받아 적은 것밖에 없다. 이로 인해 한국인은 하루도 빠짐없이 '수치(數値)로 인한 공포감'에 휩싸였다. 오로지 수치에만 골몰하는 방역은 진작 '위드 코로나'란 바이러스와의 공존 개념이 제시됐음에도 실제로는 바이러스와 함께 살 수 없다는 인식을 형성했고, 위드 코로나는 방역을 중단하고 '자연면역 체계'로 이행되어야 진정 의미가 있음에도 절대 소수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위드 코로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정부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언론도 이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한국 언론의 현주소였고, 지금도 그렇다.
한국 사회에서 기자들을 부르는 멸칭으로 '기레기'가 있다. 다들 알다시피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다. 사실 관계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기사를 쓰거나,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기사 수가 범람하자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자극적이거나 다소 과장된 머리기사(헤드라인)를 씀으로써 신뢰도가 떨어졌기에 생긴 부정적 호칭이었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좌우 갈등이 심해지면서 특정 이념 및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내가 지지하는 정당(정치인)에 우호적인 기사를 쓰지 않는 언론'을 기레기라고 칭함으로써 그 의미가 다소 전용(轉用)됐다. 애초에 객관적이고 공정한 언론은 존재할 수 없음에도 이런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비난하고 매도한 결과인 것이다.
그렇다고 '방역 관련 비판 기사'가 거의 나지 않았단 이유로 모든 언론은 쓰레기고, 모든 기자는 다 기레기라고 주장할 맘은 없다. (나는 정치적으로 무당층이고, '한국의 좌와 우' 양측 모두에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 나름대로의 정치적 소신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의 논리와 언어에 저항하면 저항했지 순응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그들이 방역에 관련된 비판적 기사를 내지 않는 것만큼은 강하게 지적하려 한다. 왜냐, 언론이라면 존재하는 대상 또는 발생하는 현상을 두고 '이것이 정말 합당한가'에 대한 비판 의식을 기반으로 기사를 써야 하는데, 지난 3년을 돌아보면 적어도 방역이라는 정책 혹은 가치에 대해서는 어떤 언론도 그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여태까지 본 기사라고는 지난 5월 충북대 의대 손현준 교수가 경남도민일보에 기고한 '칼럼'과 경북대 의대 이덕희 교수가 작년 11월 세계일보에 이어 올해 3월 매일신문과 진행한 면담 기사뿐이다. 내 능력의 부족 탓도 있겠지만, 이외에는 도저히 방역 자체에 비판적 시각을 제기하는 기사를 찾을 수 없었다. 기껏해야 개인이 운영하는 네이버 블로그나 브런치 정도인데, 방역 비판을 넘어 극단적인 주장을 펴 신뢰나 지지를 얻기가 어려워 보이는 글이 적잖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사회의 지배 가치이자 다수 논리인 방역에 대해 아무 언급 없이 그저 받아쓰기 수준의 기사만 양산해 냄으로써 조금이라도 다른 시각을 전달하는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게 문제가 아니라면, 언론은 사실상 방역 논리에 세뇌되어 옳고 그름의 판단을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내가 보기에 언론에서 방역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기사를 작성하거나 관련 인물을 조명하지 않는 이유로는 '방역에 의문을 제기할 생각이 없어서'도 있겠지만, 위에 언급했듯 '방역에 대해 극단적인 의견을 펴는 사람들' 때문인 점도 크다. 생각해 보면 전 세계적으로 방역에 손을 놓았거나 방역과 관련된 조치(사회적 거리 두기, 마스크 착용 강제)를 취하지 않은 세력은 대개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적 성격을 가진 극우파였다. 실제로 서양 여러 국가의 정부에서는 바이러스를 아예 없는 존재 취급했고, 방역에 매우 부정적이었던 이들도 바이러스는 사기라고까지 주장했다(...). 그런데 하필 그런 주장이 확산 초기, 사망자가 가장 높은 비율로 발생했을 때 많이 제기되다 보니 안 그래도 바이러스 확산에 민감했던 한국 언론과 국민은 방역 전면 재검토나 중단을 외치는 모든 사람 또는 집단을 '극우 세력'으로 치부했고(실제로 종교의 자유를 들어 종교 활동을 이어가겠다 선언한 일부 개신교회가 극우 세력으로 몰려 어마어마한 비난을 받고 모욕을 당했다), 확진되기만 하면 그 사람과 집단을 '정부 말도 안 듣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은 몰상식한 인간(집단)' 취급한 전력이 있기에 정부 주도의 강제성을 강하게 띤 방역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한국 사회에서 괜히 이런 분위기에 반하는 기사를 썼다간 '이기주의자', '쓰레기 언론(인)'을 넘어 '극우 매체'로 낙인찍힐 것이 두려웠던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이유로 방역에 대한 찬성 논조가 담겼거나 방역 관련 사항을 받아 적는 수준의 기사만이 난무하게 된 것이다. 벌써 해(年)의 뒷자리가 두 번이나 바뀌었음에도 초기에 형성된 이러한 인식은 언론계 스스로에게 아예 의심과 의문조차 허하지 않는 틀로 작용하여 방역에 문제가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그에 따른 근거조차 소개하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이 시기에 '전문가'의 권위가 급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전문가의 권위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무슨 이유에서 기인했는지는 여기서 논할 바가 아니나 실제로 그렇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의학계 인사가 절대적으로 정부 정책 수립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발언(제언) 내지 주장이 언론을 통해 사회로 전달되면서 바이러스에 어떻게든 감염되고 싶지 않았던 수많은 개인은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지닌 그들이 하는 말을 철저히 따르게 됐다(이에서 알 수 있듯 전문가에의 절대적 신뢰 또한 선택적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주장이 모든 걸 틀어막음으로써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해야 한다는 정부 인식과 국민 정서에 완전히 부합하면서 도무지 다른 의견은 제기될 틈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애당초 방역의 부당함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묻혀버렸고, 오로지 방역을 옹호하고 더 나아가 방역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학계의 의견만이 남게 된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희망 고문하며 지내왔던가? 이를 생각하면 언론은 각성해야 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그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한국은 끝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야 말았고, 그나마 몇몇 전투에서는 '잔재'가 되어버린 구태 방역 체계를 유지하며 고전(苦戰)하고 있을 뿐이다.
아마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한국인은 지난 약 3년의 시간을 보내며 언론의 보도에 어마어마하게 영향을 받아 왔다. 각종 수치는 정부에서 집계하여 발표했다지만 이를 퍼 나른 것은 언론이었고, TV 보도건 인터넷에서 발행된 기사건 종이 신문이건 다 똑같은 얘기뿐이었기에 생각의 폭에 제한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과연 언론이 방역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게 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기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도 있겠지만(그런 이가 가장 많겠지만), 나는 언론은 '당연히 기여했다'고 단언한다. 작은 목소리는 너무나 쉽게 묻히고 마는 사회에서, 모두가 선양하고 선전해댔던 이른바 'K-방역'의 부작용이나 근본적 모순을 지적했다 한들 얼마나 주목을 받았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그런 시각조차 제기하지 않은 것에 대해 언론은 결코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그들이 면담한 전문가가 거의 한 사람도 빠짐없이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 의대 교수들이었고, 그중 단 한 사람도 방역 전면 재검토나 중단을 언급한 적이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하다(이는 문재인 정부 시기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변함없다). 재차 언급하지만 난 언론을 이념적 이유로 기레기 취급할 생각도 없고, 그런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언론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 지난 3년간 당신들의 침묵의 대가로 모든 한국인이 방역의 늪에 스스로를 몰아넣어 이에서 빠져나올 생각조차 안 하게 되었음을 안다면, 그 죄과는 결코 가볍지 않음을 기억하라. 언론의 책무란 방역이란 사회 주류 가치를 옹호하고 이에 의거하여 기사를 양산하는 것이라 아니(었)다. 방역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가 대두되었고, 이와 관련하여 수많은 기사가 쏟아졌지만 그러기 전에 이런 문제가 진정 무엇을 인해 발생했는지, 어떤 조치를 취해야 이런 문제가 해결되거나 그나마 완화될 것인지를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언론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자 그 책무(였)다.
내가 모든 분야에 통달한 현자는 아니지만, 개인과 정부, 학계와 언론에서 짜 놓은 '방역'이란 프레임에서 벗어난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지 모른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내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오로지 나 혼자 그 틀에서 벗어났다. 이 말인즉, 당신들의 일관적인 방역에의 보도로 인해 아직도 절대다수가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만약 이러한 현실과 사실을 간과하고 되레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나온다면, 미안하지만 당신들에겐 '언론'을 자처할 자격이 없다. 정말 언론 기능을 하고 싶다면, '민주적 시민성' 타령하며 방역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만이 공동체를 수호하는 길이자 인간으로서의 책무라 말하기 전에 그 방역이 오히려 시민성의 개념을 일원화하고 공동체를 방역이란 틀에 가두어 상호 의심-감시 체계를 형성했고, 방역을 명목으로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의 특성마저 포기하게 했음을 지적해야 마땅하다. 생각이야 다를 수 있지만, 오히려 생각의 차이를 인정한다면 결코 언론은 하나의 목소리만이 사회에 나도록 해선 안 됐다. 그런 점에서 이번 코로나 사태의 한국 언론은 제 기능을 다했다 평가받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