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가정에서 당연한 것들이 입안의 생선가시처럼 우리를 불편하게 했다. 이 상황은 꽤 오래 지속됐고 가시를 뱉지도 삼키기도 애매한 상황이 특히 힘들었다. 재혼가정을 먼저 살아본 경험자로서 앞으로 이 길을 가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우리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공유한다.
<재혼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은 ①첫날, ②생활편, ③호칭편, ④관계편, ⑤번외편 으로 나눠 정리한다.
친밀도를 높이고자 아이방과 우리방을 붙였다. 아이가 화장실을 갈 때 우리방을 지나가게 배치, 접촉 횟수를 늘렸다. 우리방은 항상 문을 열어뒀었다.
아이방에 누우면 파란색 하늘이 보이는 것처럼 천청을 페인트로 마감했다. 밝은 조명과 햇살이 이쁘게 들어오게 창에는 블라인드를 설치했다. 마음껏 딩굴딩굴할 수 있는 퀸사이즈 침대와 이쁜 가구를 넣었다. 거실은 아이가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소파에 앉거나 누울 수 있도록 ㄷ자 엄청 큰 소파를 놨다.
새 가족을 이루었을 때 갑자기 구성원이 된 아이에 대한 배려가 최우선이다. 특히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신경 쓸게 많다. 내 경험상 적당한 독립감과 개방감은 아이가 초기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아이가 처음 집에 온 날
"첫인사를 뭘로 할까? 첫 느낌이 중요한데..."
"말을 너무 많이 걸어도 불편해하겠지?"
"음식은 뭐로 준비할까? 아이는 뭘 좋아해"
아내가 걱정을 많이 했다.
아이공간 준비할 때는 할 일이 많아 생각을 못했는데 막상 그날이 다가오니 이런저런 생각이 올라오는 듯했다. 난 걱정하는 아내가 되려 고마웠다. 참 착한 사람이다
"처음부터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 그냥 서로 편안한 게 좋을 거 같아"
난 아내에게 이제 평생 함께할 가족이니 천천히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날이 왔다. 준비는 끝났다.
청소광인 아내답게 집안은 반짝반짝하다. 아이방은 페인트 냄새마저도 다 날렸다. 강아지도 꽃단장을 했다.
아이가 집에 와서 어색한 시간 없게 바로 식사하는 흐름이 좋을 것 같았다. 내가 아이를 데리고 오는 동안 아내는 집에서의 첫 식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아이가 집에 들어오는 첫 순간
"집에 온 걸 환영해, 우리 잘 지내보자" 아내는 환하게 웃었다.
"네. 안녕하세요..." 쭈뼛거리고 들어오는 아이에게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들었다. 우리 강아지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 환장한다. '미친 애교'로 아이 혼을 쏙 뺐고 덕분에 어색함이 많이 풀렸다. 요놈들이 이번에 밥값을 톡톡히 했다.
"아들, 괜찮아? 자꾸 환경이 바뀌게 돼 미안해. 아직은 낯설겠지만 이모(아내) 좋은 사람이니까 천천히 친해져 봐" 식사를 마치고 아이와 둘이 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참, 방은 마음에 들어? 이 방 꾸미는 건 이모 아이디어야. 이모가 다 준비했어" 그리고 아이에게 아내가 한 걸 슬쩍 흘렸다.
"어, 그래요?" 아이는 짧게 대답했지만 기분은 괜찮아 보였다.
재혼가정에서 친생부(모)-아이-새엄마(아빠)의 관계는 미묘하고 복잡하다.
아이는 친생부(모)와 더 친밀함이 있기 때문에 한쪽으로 관계가 쏠리기 쉽다. 이럴 경우 균형이 깨진다.
나는 아이에게 나의 역할을 줄이고 이모(아내)의 역할을 부각하려고 애썼다.
가능한 아내와 함께 아이와 이야기했고 아이와 둘이 한 이야기는 모두 아내와 공유했다. 아이가 어떤 의견을 내면 엄마와 같이 이야기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밟았다. 내쪽에 실린 '무게추'를 엄마 쪽으로 옮겨갔다.
지금은 '아빠보다 엄마와 말이 잘 통해'라고 나를 건너뛰고 엄마와 이야기한다.
우리집의 권력은 완벽하게 아내에게 넘어갔다.
재혼가정에서 아이의 친생부(모)의 '무게추'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아이와 새엄마(아빠)의 그 미묘한 간극을 잘 캐치해야 한다. 친생부(모)는 집에서도 '관계의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힘은 들겠지만 그 끝은 행복하고 단단한 가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