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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주인 May 15. 2024

재혼가정에서 일어나는 일-③호칭편

싱글대디와 미스, 재혼가정 연대기<8>

"이모,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아들이 집에 온 지 반년이 지났지만 '이모'라는 어정쩡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새 가족 적응도 이만하면 된듯했고 호칭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갑자기  '엄마'라 부르라고 하기도 민망했다. 뭔가 의미 있는 타이밍이 필요했다.


우리 가족 유럽 배낭여행?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가족여행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배낭여행 하며 부대끼다 보면 가족애도 생기고 '엄마'라는 호칭이 좀 더 자연스럽게 나올 것 같았다. 아내도 좋은 방법 같다고 했다. 어디로 갈지는 아이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아이랑 둘이 가족 배낭여행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엄마'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아이도 '이모' 호칭이 좀 이상했다고, 반발하거나 싫어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여행시기는 몇 달 후인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로 잡았다. 아이가 패션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 밀라노, 베니스, 비엔나, 파리, 런던을 도는 일정을 짰다. 항공권과 기차를 예약하고 숙소는 무조건 3명이 같이 사용하는 호텔과 에어비앤비를 잡았다. 3인실 숙소는 찾기가 어렵고 가성비도 나빴지만 우리는 같이 부대낄 공간이 최우선이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여름방학만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아버지가 폐암 진단을 받았다.

많이 진행된 상태였고 삶이 몇 달 남지 않은 슬픈 상황이었다.

불효자 같지만 여행을 갈지 말지, 솔직히 고민 됐다. 그냥 놀러 가는 여행이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여행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항공, 숙박 등 취소가 안 되는 상황이라 금전적인 손해도 컸다. 하지만 부모님 병중에 여행 가는 게 아이에게 교육적으로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 아이와 상의 후 여행을 취소했다.


여행 출발하기로 했던 날.

우리 가족은 인천공항에 갔다. 출국장에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출국장이 보이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아들, 아쉽지만 오늘은 여행 기분만 내고 내년 여름방학 때 꼭 가자" 아이 기분을 토닥여줬다.


"아들아. 음....여행 가서 '엄마'로 호칭 바꾸기로 했잖아? 그런데 여행 못 가는 상황이니 대신  올해 안까지 바꿔보면 어떨까?"


"네, 괜찮을 것 같아요"


다행히 아들은 '의심'이 많이 풀린 듯했다.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준 아내 덕분이다.

    

12월 어느 날.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아내와 급하게 내려갔다. 아버지가 호흡기 너머로 나를 불러서 아주 힘들게 말하셨다.


"내... 비석에... 아가(아내) 이름을... 넣어도 되겠어?..."


사실 아버지는 가족 보다 주변 시선이 더 중요하신 분이었다. 그래서 나의 이혼과 재혼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주변에 알리지도 않고 계셨다.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도 비석에 손자 엄마 자리가 비어있는걸, 남들이 보는 게 싫었던 거다. 난 사실 그런 아버지와 깊은 정을 나누지는 못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 주변 시선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관계를 확고히 하고 싶었다.


'돌비석에 이름을 남기는 것만큼 불변이 어디 있겠는가?'


아내 역시 동의해 주었고 나의 처, 아이의 엄마로 아내 이름은 비석에 새겨졌다. 이로써 우리는 공식적인 가족이 됐다. 


10년이 넘게 지지금, 명절 아버지 산소에서 비석을 보면 그때의 일이 떠오른다. 별일이 많았다.


그해 12월 31일. 종로 보신각 앞

새해를 알리는 타종과 함께


"엄마~"


"뭐라고? 잘 안 들려"


"엄마!!!!!!"


그 수많은 인파와 소음 속에서 아이의 첫 '엄마'가 '딩~' 종소리와 함께 우리를 울렸다. 울림이 있는 행복한 밤이었다.

 

다음 해, 중3 여름방학.

한 달간의 유럽배낭여행을 떠났다. 24시간 붙어있는 것은 다른 경험이었다. 때론 불편하고 삐지기도 했지만 우리 가족은 더 단단해졌다.


 

여행 중에 아내와 아이는 항상 붙어 다녔다. 나는 꼽사리 모드였다.




살다 보니 잊고 있었다.

갑자기 새 가족이 된 그때, 롤러코스터 타는 것 같았던 아찔했던 상황들을.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그때의 기억을 기분 좋게 꺼내본다.

브런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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