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간주인 May 22. 2024

재혼가정에서 일어나는 일-④관계편

싱글대디와 미스, 재혼가정 연대기<9>

관계편,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몇 시간째 썼다 지웠다 반복하고 있다. 목차를 수정하고 건너뛰고 싶은 마음이 쉼 없이 올라온다. 자꾸 글쓰기에서 도망치고 싶다. 

결국 발행일까지 와버렸다. 일요일 늦잠까지 포기하고 회사에 나왔는데 안 써진다. 저녁 카페에서 다시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한번 건너뛰지 뭐' 마음을 비웠다. 평온이 찾아왔다. 수요일까지는 시간이 많아 있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발행시간에 쫓기고 말았다.


내가 이렇게 '관계편'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다.

재혼가정 실패의 대부분은 '관계'에서 발생한다. 그만큼 복잡하고 민감하고 어렵고 중요하다. (그걸 글로 풀어쓸 실력이 부족하다)

아이가 있는 재혼가정은 혈연과 비혈연이라는 관계의 불균형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 관계의 쏠림은 때론 재혼가정을 위기상황으로 몰기도 한다. 

시댁, 처가로 확장된 관계는 부부를 '내편'과 '남의 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나도 관계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균형을 잡았다. 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고 시간에 넘긴 관계도 있다.

나의 이야기가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새 아이(피가 다른 형제)를 가질 것인가?


새 아이가 생기면 우리 부부의 마음이 한쪽으로 쏠릴까 두려웠다. 조금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아내가 핏줄에 끌려서 한번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들이 또 상처받는까 봐 두려왔다. 그래서 재혼을 생각할 때부터 새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이야기했고 어리고 착했던 아내는 내 생각을 따라주었다. 


시간이 꽤 지나고 아내에게 물어봤던 적이 있다.

"아이 좋아하잖아?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는 내 말을 왜 따라줬어?"


"그때 오빠가 너무 완강했었어. 내가 다른 이야기를 했으면 심하게 부딪혔을 거야, 난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아내의 대답에 아쉬움이 잔뜩 묻어있었다. 


아내에게 많이 미안했다. 지나온 시간을 보면 아내는 새 아이가 생기더라도 모든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난 일어나지도 않았을 걱정에 눈이 가려, 가능성조차 열어두지 않았던 거였다.

나만의 짧은 생각으로 인해 아내는 배속에 있는 아이의 심장소리와 엄마라는 아이 첫 옹알이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없었다. 어린아이와 함께 커나가는 엄마의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아들이 꽤 크고 나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아빠 너무 이기적이지 않아? 엄마가 너무 많은 걸 희생했잖아, 나도 동생이 있으면 좋았겠어"

 

역시 내 판단이 틀렸었다.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의 걱정은 내려놓고 아내와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아내의 생각을 믿고 따라주고 싶다. 

재혼부부에게 새 아이는 걱정이 아니다. 축복이다.


조금 결이 다르지만 내가 놓쳤던 부부간 대화방법을 덧붙인다.

부부가 의논할 때 한쪽의 생각이 너무 강하면 충돌하거나 다른 쪽이 끌려올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잘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상대 탓을 하게 된다. 그리고 끌려오는 쪽도 언젠가는 폭발한다.


대화는 말 보다 듣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들어주는 자세'이다. 

특히 부부간 대화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 들어나 주지'라는 마음으로 듣는 척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이구나' 공감하며 들어야 한다. 대화의 태도는 한 번에 바뀌지 않는다. 그냥 오늘 저녁부터 조금씩 변하면 된다. 퇴근(가사) 후 지쳐 소파와 한 몸이 돼 TV를 보는 중이더라도 아내(남편)가 말을 걸면 TV를 끄고 일어나 상대방에게 눈길을 줘보자. 집안이 편안해질 것이다.



친부-아이-새엄마, 미묘한 삼각관계


"엄마가 전에 A라고 이야기했잖아요"

"아니야, 나는 B라고 이야기했었어"


이런 아내와 아들의 말이 또 다르다. 

약속, 공부, 청결, 시간, 용돈, 음식 등 일상 속에서 아내와 아이의 작은 트러블이 가끔 발생했다. 내가 보기엔 꼭 중요한 일도 아니고 맞고 틀림도 없다. 하지만 둘 다 나에게 자기편에 서라고 무언의 압박을 한다. 대략 난감이다. 

재혼가정 초기엔 트러블 자체를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에 내가 중재해 최대한 빨리 풀려고 했다. 그러다 보면 엄마나 아들, 어느 한쪽 편을 드는 상황이 생기는데 이게 후폭풍이 더 컸다. 나어설픈 심판 역할은 문제를 키우기만 했다.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새엄마와 아들의 트러블은 빨리 풀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가족화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재혼가정이어서가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흔한 일이다. 특히 아내는 아가씨에서 갑자기 중학생 엄마가 됐다. 아내도 적응하고 성장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아내와 아들의 트러블에 가능한 개입 하지 않고 아내를 믿고 기다렸다. 

대신 트러블이 잠잠해지면 가족이 함께 하는 작은 이벤트를 많이 만들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맛집을 가고 또 강아지들과 근교여행을 다녔다.


살다 보면 부모와 자식 간에도 서로 기분이 나쁠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잠시 나빴던 기분이 감정으로 쌓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 역할은 어른이 해야 한다.


재혼가정 '무게추'의 이동


가정은 아이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재혼가정은 특히 조심해야 하는 게 있다.

아이와 친부(모)의 연결고리가 강하기 때문에 새엄마(아빠)는 소외감을 느끼기 쉽다. 우리집도 초기엔 그랬었다. 아이는 새엄마보다 친부인 나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당연한 현상이다. 역시 아이에 대한 일은 아내와 상의는 했지만 내가 직접 아이에게 피드백을 줬다. 이런 상황은 반복됐다. 


"나 이 집에서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어, 그냥 가정부 같아"


"아니야, 마눌님이 있어 우리집이 돌아가는 거야, 우리집의 중심이라고.."


아내의 말에 토닥여 주긴 했지만 아내가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겠다 싶었다.  

아내의 부담을 줄여주고자 했던 나의 행동이 집에서 엄마의 역할을 지우고 있었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당신이 그런 기분이 들었다면 그게 맞는 거야, 그런 기분이 들게 해서 미안해"

며칠 후 아내에게 내 생각을 다시 이야기했다. 


 - (아빠는 회사) 엄마는 가정 중심, 아이에게 인지 시키기

 - 아이방 대화를 거실 가족대화로 옮기기

 - 아이에게 피드백은 엄마가 직접

 - 용돈도 엄마가 직접

 - 옷을 사거가 물건을 살 때 엄마와 동행, 결제

 - 가족 카톡방에서 아이 톡 다음엔 엄마, 아빠는 나중에


아내와 조율해 몇 가지 행동작전을 짰다. 우선 이대로 해보고 상황에 맞춰 수정해 나가기로 했다. 너무 많은 일이 있어 이제는 기억도 희미하지만 예상을 벗어나는 별의별 상황이 다 있었다.   


"아빠 왜 이리 이해를 못 해? 엄마랑 이야기할래" 어느 날부터 우리집의 '무게추'는 아내에게 완전히 넘어갔다. 우리 작전은 성공했다.






나와 아내는 9살 차이다. 남자가 여자보다 대략 7년을 먼저 간다고 하니 아내는 없이 16년을 살 수도 있다. 

얼마나 긴 시간이 될지 모르지만, 내가 세상에 없는 시간에도 아내와 아들이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이 풍만하기를 바란다. 지금의 나와 어머니처럼 말이다. 나는 출근 때 어머니와 통화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나의 힐링타임이다. 언젠가 이 통화를 못할 때가 오리라 아쉬워하면서.


나는 조기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나 없이 혼자 남을 아내를 위한 준비도 하고 있다. 또한 나의 부재 시 아내와 아들이 관계에 필요한 것도 준비해야 한다. 사실 아내보다 오래 살아서 아내 홀로 남겨두고 싶지 않지만 이건 선택권이 없는 영역이니, 건강을 챙기는 게 최선이다.


아직 글 쓰는 게 재미있지 않다. '이 정도 시간을 쓸 만큼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이번 주제는 너무 쓰기 어려웠다. 내가 써놓고도 '뻘글' 같아 부끄럽다. 하지만 혹시나 어느 한분에게라도 작은 도움이 될까 해 발행키를 누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