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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주인 May 26. 2024

부모와 아이, 대화의 기술

싱글대디와 미스, 재혼가정 연대기<10>

"군대 가기 며칠 전에 아빠와 여행 가주는 아들은 나 밖에 없을 거야"


아들 입대 전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다 생각한 것이 울릉도 도보 일주. 몸이 약한 아내는 아쉽지만 집에서 강아지를 돌보고, 우리 부자는 3박 4일간 울릉도 한 바퀴를 걸어서 돌았다. 마지막 터널 구간은 걸어 들어갔다 위험해서 돌아 나와 버스로.


'정말 귀한 시간 내준 거야' 아들의 생색에 매 끼니 식당에서 지갑이 거덜 났지만 행복했다. 우린 낮엔 걷고 밤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다 잠들었다. 지금은 아들이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가끔씩 한 시간 넘게 통화하곤 한다. 우린 친구는 아니지만 아주 친한 사이다.

우리 부자가 처음부터 이런 관계는 아니었다. 경상도 아빠들이 그러하듯 아들과 대화도 적었고 거리감이 꽤 있었다. 그러다 이혼, 재혼을 하는 과정에서 아빠엄마 역할을 같이 하면서 아들과 많이 가까워졌다.


아마 그 시작은 '아들의 야동'이었던 듯하다.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 방문을 잠근다던지 화장실에 오래 있는 일이 많아졌다. 남자만의 촉이 왔다. 처음엔 모른 척했는데 횟수가 잦아지고 점점 대담해졌다. 혹시 아내가 현장을 보는 아찔한 상황이 걱정됐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이야기하기도 민망했다. 고민스러운 마음에 네이버를 뒤지다 보니 '아들의 OO행위를 보고 충격받았다'는 엄마들의 고민이 넘쳐났다. 아이를 놓은 엄마도 이러할진대 아내가 현장을 보면 큰일이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언젠가 터질 것 같았다.


그 당시 네이버 지식검색에는 야동 보는 아들 때문에 충격받았다는 질문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집에서 이야기하기가 그래서 간식 사러 간다고 하고 아들과 차를 타고 나갔다.

"아들, 남자대 남자로 할 이야기가 있다. 너 혹시 야동 보니?"

"...." 대답이 없다.

"너 야동 보다 엄마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네이버 지식검색에 있는 '아들의 야동에 충격받은 엄마들'의 글들을 보여주었다.

"아이를 낳은 엄마들도 이리 놀라는데 지금 엄마가 보면 어떻겠어?"

야동 보는 게 나쁜 행동으로 몰고 갔다. (지금 생각하면 틀린 행동이지만 그땐 그랬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눈물을 흘렸다.

"학교 성교육에서도 야동 보는 건 자연스러운 거래요. 친구들도 다 보는데, 왜 나는 보면 안 된다는 건데요?"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었다.

'우리 집만의 특수성'으로 아이를 설득했지만 아이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차 안에서 야동에 대해 100분 토론이 벌어졌다. 아들은 진지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상황이 우스웠다. '이게 이렇게 진지하게 이야기할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물러서기도 애매했다. 아내가 현장목격하는 상황은 피해야 했으니까. 

한 시간 넘게 이야기 했었지만 아들은 뭔가 절박하고 서러워 보였다. 아이를 설득할 수도 꺾을 수도 없었다. 엄마와 이야기해 보고 다시 이야기하는 걸로 일단 '휴전' 했다.


아내와 이 상황을 조심스럽게 공유했다. 다행히 아내는 자기도 남동생이 있어서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냥 자기가 조심하겠다고, 아이방에 들어갈 때 꼭 여러 번 노크하고 들어가겠다고.

우리는 아이에게 이야기하고 '인정'의 의미로 방에 향기 좋고 부드러운 크리넥스를 넣어줬다.


이후에도 여자친구, 학업, 진로 등 아들과 의견이 다른 적이 많이 있었다. 부모 입장에서 아이의 생각이 답답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40년을 넘게 산 우리와 겨우 10년을 산 아이의 생각은 다른 게 당연한 거였다. 이 차이를 인정해야지 대화의 물꼬가 트인다.


우리 집은 재혼가정의 특수성으로 인해 아이 입장에서 들어주기 위한 노력이 더 많이 필요했다. 과정에서 3가지 대화의 기술을 습득했다.


대화의 기술. 1

자녀와 공통 관심주제 발견하기 혹은 만들기


부모 자식 간에는 '어떤 대화라도 대화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좋다'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대화가 많아질까? 우리는 아들의 관심사에 관심을 보이는 방법을 썼다.

'아들, 요즘 만나는 여자친구 없어?' 이렇게 말을 걸면 '내가 뭔 여자친구야?" 그러면서도 자기나 친구들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또 이런 일이 있었다.

"친구집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그 부모님이 갑자기 안된다고 해요. 우리 집에 데리고 와도 될까요?"

"당연히 되지, 우리도 아들 친구 보고 싶네"

아들 친구들이 집에 온 날, 손이 큰 아내는 고기 10킬로와 엄청난 음식을 준비했다. 아이들이 먹기 시작하는 걸 보고 우린 자리를 피해 줬다. 동네 카페에서 우리도 데이트를 했다.


이 날 이후 우리 집은 아들 친구들의 '아지트'가 됐다. 그놈들이 다녀가면 집안일이 많아지긴 했지만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았다. 우리는 아들 친구들을 알게 됐고 "전에 왔었던 키 큰 얘, 걔는 요즘 뜸하네" 같은 공통주제를 많이 만들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된후에도 입대, 휴가, 어학연수 등 이벤트가 있을때 아들 친구들이 우리집에 모인다. 함께 성장하는 그들을 보면 흐뭇하다.


대화의 기술. 2

'부모의 강박관념' 버리기


아이와 이야기하다 보면 '교육적으로 좋은 말만 해야겠다'거나 '부모뜻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때가 있었다. 이럴 때 아이는 몇 번 더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말문을 닫고 듣고만 있는다. 그러다 틈을 보고 대화에서 도망간다.

 

아이와 대화할 때는 아이 표정을 읽어야 한다. 보려고 하면 보인다. 아이가 관심이 있는지, 지루해하지 않는지, 아이의 반응에 따라 '부모가 됐다, 친구가 됐다' 해야 한다.

어른인 우리도 일방적, 하향적 대화가 싫다. 초등학교시절 교장선생님 훈화말씀이 지겨웠고 부장님의 '꼰대말'에 머리가 지끈하다.


부모의 강박관념을 내려놓고 가르마처럼 2:8 비율로 이야기하면 어떨까?

부모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 2 : 아이의 관심주제 이야기 8

우리 집은 이 정도 비율이 적당했다.


대화의 기술.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아이) 뜻을 관철시켜야 한다면


지금 결정이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 부모로서는 너무 당연한 일인데 아이가 이해를 못 하는 경우 난감하다. 그렇다고 부모라 찍어 누르면 아이와 벽이 생긴다. 그 하나의 벽은 점점 많아지고 높아질 것이다.

40~50년 산 부모와 십여 년을 산 아이의 생각은 격차가 날 수밖에 없다. 부모에게는 당연한 일인데 아이는 이해할 수 없단다. 같은 하늘을 봐도 부모는 맑다는데 아이는 흐리단다. 이럴 경우 우리 집에 적용했던 대화의 기술을 소개한다.


1. 대학생 되기 전

부모 혹은 아이가, 3번의 설득과정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매회 새로운 근거를 찾아 설득하고 듣는 사람은 오픈마인드로 듣는다.

3번의 설득에도 합의가 되지 않으면 부모뜻을 따르고 부모는 그 책임을 진다.


2. 대학생 된 후

부모 혹은 아이가 3번의 설득과정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매회 새로운 근거를 찾아 설득하고 듣는 사람은 오픈마인드로 듣는다.

3번의 설득에도 합의가 되지 않으면 아이뜻 따르고 아이는 그 책임을 진다.


다행히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3번의 설득 내에서 다 합의가 됐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후 '입양 문제'가 있었고  3번의 설득에도 합의가 안 됐다.

가정이 깨질뻔한 큰 갈등으로 번졌고 아이 편드는 나의 어머니와도 삐끗거렸다.


'아이에게 져줘야 되는 시점이 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된것이다.

우리 부부는 삼청동 어느 카페에서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우리는 아직 너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져주기로 했다.
너의 선택이니 결과는 너의 책임이다.
너의 생각이 맞았음을 꼭 보여주기 바란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의 결정은 옳았다. (입양 이야기는 몇 회 뒤 따로 하겠다)




"너 왜 이리 말을 안 들어" 부모가 아이 혼낼 때 자주 하는 말이다. 나도 이랬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조금 더 괜찮은 부모가 되려고 아이를 관찰하고 노력하다 보니 또 다른 길이 보였다.

나는 '부모말 잘 듣는 아이보다 생각하고 표현하고 책임지는 아이'로 우리 아들을 성장시키고 싶었다.

우리 아들이 나보다 더 괜찮은 어른이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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