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대디와 미스, 재혼가정 연대기<12>
기특하게도 아들은 한방에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붙었다. 우리 가족은 행복했었고 비록 재혼가정이지만 아들을 번듯하게 키워냈다는 자부심이 넘쳐났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아니 결혼하고 혼인신고도 했는데 니 아들을 왜 입양해?"
흔히들 혼인신고만 하면 가족관계가 완성된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혼인신고로 나와 아내는 법적인 가족이 됐지만 아내와 아들은 여전히 '동거인'의 관계다. 어감이 너무 나쁘지만 아내는 '계모'였다.(계모란 단어는 없어져야 한다)
나도 이해가 안 되지만 우리나라가 혈연사회이기 때문에 새엄마(아빠)가 상대방 자식과 법적인 관계가 되려면 입양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정말 개떡 같은 법이다.
입양의 방법
입양이란 친자관계가 없는 사람 사이에 법률적 친자관계를 맺는 창설적 신분행위를 말하며, 우리나라는 입양기관에 의한 입양을 제외하고 그 방법은 일반입양과 친양자입양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 일반입양의 경우 양자가 존속이나 연장자만 아니라면 입양하려는 자가 성년자이면 남녀, 기혼, 미혼, 자식의 유무를 불문하고 신청이 가능합니다.
② 친양자입양의 경우 양친이 3년 이상 혼인 중인 부부가 공동(다만 혼인 중인 부부의 한쪽이 그 배우자의 친생자를 친양자로 하는 경우에는 1년 이상)으로 할 수 있고, 친양자가 될 자가 미성년자여야만 신청이 가능합니다.
③ 일반입양과 친양자입양 모두 친생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며, 만약 부모가 친권상실을 선고받거나 소재를 알 수 없거나 그 밖의 사유로 동의할 수 없는 경우에는 동의가 없이도 입양이 가능합니다.
입양에는 친생모와 관계가 살아있는(법적인 엄마가 두 명이 되는) 일반입양과 친생모와 단절되고 새엄마가 법적인 엄마가 되는 친양자입양이 있다.
나는 이혼 후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친생모가 아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라 확신이 들었다. 아이를 낳았다고 다 부모가 아니다. 부모라도 최소한의 책임과 희생, 그리고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부모로 존재할 수 있다.
나는 아이가 대학생이 되면 아내와 아이의 친양자입양을 진행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친양자입양은 미성년자, 즉 아들의 생일인 11월 전까지만 가능했다. 아들이 대학생이 된 후 반년정도 시간이 있었다. 만약 친생모가 동의해주지 않으면 소송까지 생각해야 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우선 아내와 아들, 누구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낼지부터 결정해야 했다. 만약 아내, 아들 모두에게 이야기했는데 만약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누군가 마음을 크게 다칠 수 있다. 아주 조심스러웠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반대하더라고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아내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우리 아들인데 입양을 왜 해야 해?" 아내 역시 입양제도를 모르고 있었다. 아내는 내 설명을 듣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얼마 후 아들에게 따로 이야기했다.
"아, 그런 게 다 있구나. 알았어요. 근데 시간을 좀 주세요"
답변이 조금 애매하기 했지만 이때만 해도 별 탈 없이 지나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얼마 후 일이 터졌다.
"엄마(친생모)와의 관계는 내 권리인데 그걸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아들, 그럼 지금까지 널 키운 엄마는 뭐야?
엄마가 진짜 엄마가 안되는데 그건 괜찮아? 엄마한테 미안하지 않아?."
"아빠는 나 때문이 아니라 엄마 때문에 입양하려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가족이니까 당연하다는 거지."
"그래도 난 내 권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아이를 계속 설득했지만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다 나중에 알게 됐다.
아들이 말한 권리는 '친생모의 유산'이었다.
친생모는 아들의 입양 이야기에 좋은 차, 좋은 집을 보여주고 용돈을 많이 주면서 아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돈으로 엄마 자리를 지키려 했었다. 그게 자식을 망치는 길임에도.
나는 경제관념 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용돈을 엄격히 관리했었다. 아이가 외탁을 해서인지 물질욕이 많은 성향이라 꼭 필요한 교육이었다. 그렇게 제한된 소비를 했던 아이가 '돈맛'을 본 것이다. 가족보다 본인이 소중했고 세상에서 돈이 가장 중요했던 친생모의 모습이 아들에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에게 이런 나쁜 영향을 주는 친생모와의 연결을 더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친양자입양을 밀어붙였다.
이때 나의 어머니는 불난 집에 기름을 퍼부었다. 입양이 싫다던 손자의 말에 할머니가 동의를 해버린 거다. 아니 동의가 아니라 입양 가면 안 된다고 했었다.
손자에게 그리 말하면 안 된다는 나의 말에도 "애가 엄마가 있어야지, 나중에 너가 세상에 없으면 엄마라도 있어야지, 핏줄은 끊으면 안 된다"
이 말은 나의 가정과 나의 아내를 부정하는 말인데 어머니와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손자만 보이는 옛날 할머니셨다. 나의 현명한 어머니가 아니었다. 미칠 것 같았다.
할머니까지 등에 업은 아들은 '새엄마를 위한 입양이지, 본인을 위한 입양은 아니다'라며 우리가 이기적인 거라 공격했다.
나와 아들, 나와 어머니, 아내와 아들, 아내와 시어머니... 굳건했던 모든 관계가 뒤틀어지고 있었다. 당뇨로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다. 회사일도 그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혼했을 때보다 몇 배 더 힘들었다.
'내가 쌓았던 게 모래성이었던가?'
그 당시 나의 마음은 지금까지의 삶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많은 걸 포기하고 나에게 날아온 아내에게 상처 주는 아들과 어머니가 미웠다. 아무 말도 못 하는 아내가 너무 안타까웠다. 이러려고 내가 재혼한 게 아닌데.
나는 아들의 배신감, 어머니의 서운함, 아내에 대한 미안함에 무너지고 있었다.
아들을 친생모에 보내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이렇게 상황을 악화되게 만든 어머니와 연을 끊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다 포기하고 싶었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행복했던 우리 집은 지옥이 돼버렸다.
어느 날, 대면대면해진 아들이 말을 걸었다.
"저 이 집을 나가야 해요?
엄마(친생모)에게 가야 해요?"
"왜, 거기 가서 살고 싶어?"
"아니, 난 여기 있고 싶은데,
그럴 분위기가 아닌 거 같아서..."
친생모에게 2번이나 버림받은 아들은 여기서도 쫓겨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의 못난 마음이 들킨 것 같았다.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청년들은 금수저, 흑수저로 태생이 정해진다는 '헬조선' 시대에서 살고 있는 불운한 세대라 생각한다.
미성숙한 아들이 돈에 흔들리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나쁜 것은 돈으로 자식을 흔드는 사람이다.
그런 나쁜 사람에게 아들을 맡길 수 없다. 아들 인생을 망칠 순 없다.
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아내와 삼청동 조용한 카페에서 이야기했다.
우리는 상처받았지만 그럼에도 아들을 지켜주자고 했다.
언젠가는 어른이 되면 우리 마음을 알아줄 거라고.
그때까지는 좋든 싫든 우리의 몫이라고.
우리 아들의 엄마로 계속 사랑해 달라고.
우리는 서로 위로하면 다독거렸다.
아들에게 우리 마음을 온전히 말로 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는 편지를 썼다. 많은 글들이 있었지만 우리의 메시지는 하나였다.
"너가 어떤 선택을 하던 우린 가족이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아빠엄마는 끝까지 너를 돌볼 거다. 더 이상 입양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편지를 전해주고 상황을 덮었다. 이후에도 삐걱거리는 시간이 좀 있었지만 우리 집은 조금씩 예전의 평화를 되찾았다.
몇 년 뒤 아들이 원해서 일반입양을 진행했다.
그러면서 또 알게 된 게 있다. 역시 사람(친생모)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시간이란 게 참 대단하다.
그땐 매순간순간 숨이 막혔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친양자 입양. 지금 생각하면 그때만큼의 확신은 없다.
아들의 입장이 아니라 '아들이 돈에 넘어갔다'는 내 감정에 허우적거렸던 듯하다.
나와 아내가 섭섭할지언정 친생모와의 관계는 아들의 권리가 맞다. 본인이 선택하고 책임지면 된다. 그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며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가정이 깨질뻔한 것은 나 때문이었다. 다행히 감정의 폭주를 멈췄던 그 당시의 나에게 고맙다. 끝까지 같은 길을 가준 아내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