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싱글대디와 미스, 재혼가정 연대기
네. 가능합니다.
미리 겁내지 마세요.
재혼 12년 차인 제가 장담합니다.
하지만 초혼가정 보다 몇 배 더 어려운 건 사실이다.
남편, 아내 2인의 신뢰에서 시작되는 초혼과 달리 재혼은 다양한 구성원, 복잡한 가족관계, 아픔과 의심으로 상처 난 마음을 안고 시작된다. 초혼 보다 몇 배나 많은 갈등 상황이 발생하고 구성원들은 견고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재혼부부만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다.
두 번 실패하지 않겠다는 의지, 그리고 이혼 후 받은 상처만큼 성장한 자신. 조금 더 나를 알게 됐고 상대방의 마음을 좀 더 잘 읽는 눈과 귀를 가지게 됐다. 다름을 다투기보다 차이를 인정하는 비법을 터득하게 됐다.
하지만 이혼했다고 이 장점이 다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 깊이도 다르다. 그걸 볼 줄 아는 눈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재혼결정은 절대 서두르면 안 된다. 아이가 있다면 아이와의 많은 시간은 더더욱 필요하다.
재혼을 고민하는 분들은 자기도 모르게 이혼의 상처만큼 성장해 있다. 상처에 주저하지 말자. 우린 제대로 된 성장통 주사를 맞았다.
12년 전, 우리 새 가족은 갑작스럽게 시작됐다. 여기에는 어이없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누가 봐도 이상한 가족의 시작) 31살의 아가씨가 남자 중학생의 학부모가 됐다. 아내는 엄마 경험이 없었고 아이는 의심과 상처가 가득했다.
아내와 아이의 나이는 겨우 17살 차이였다. 덩치가 큰 아이와 아내가 걸어가면 여자친구로 보였다. 그 당시 아이는 아내를 '이모'라 불렀다. 거기다 나이 많은 내가 끼면 조합은 더 이상했다. 우리 가족 3명의 그림은 누가 봐도 이상했다.
이렇게 시작됐던 우리 가족의 시즌1이 끝나가고 있다.
아이는 잘 성장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고 있다. 비타민 같은 여자친구와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바라만 봐도 흐뭇하다.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복합통증증후군(CRPS)으로 바닥까지 떨어졌던 아내는 다행히 조금씩 건강을 되찾고 있다. 최근에는 CRPS 극복기를 글로 써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나는 조금 빠른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미친 듯 달려왔다면 앞으로는 주변도 좀 보면서 천천히 걸어가 볼 생각이다. 지금 글을 쓰는 것도 은퇴 후 재미있거나 의미 있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감사하게도 누가 봐도 이상한 재혼가정이었던 우리 가족의 시즌1은 '해피엔딩'이다.
먼저 재혼가정을 경험한 사람으로 나와 같은 케이스의 재혼부부에게 한마디 조언으로 첫 글쓰기였던 <싱글대디와 미스, 재혼가정 연대기> 연재를 마무리한다.
안으로 굽는 팔을 어떻게든 부여잡아라
'피는 물보다 진하다' 말이 있을 만큼 한국은 혈연사회다. 즉 가족은 핏줄이란 뜻이다.
하지만 재혼가정에서 핏줄의 힘은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그만큼 위험할 수도 있다. 초혼은 원점이 모든 관계의 시작이지만 나와 핏줄인 아이, 새엄마와의 관계의 시작점은 어쩔 수 없는 불균형이다.
처음 아이는 당연히 핏줄인 내가 편하며 나에게 의지하며 새엄마와는 거리를 두려고 한다. 만약 내가 아이를 위한다고 좋은 부모 역할을 모두 해버리면 아내의 역할은 사라진다. 엄마의 경험이 없어서 서툰 게 당연하지만 그 역할을 내가 계속 챙기게 되면 안 된다. 새엄마가 아이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나는 집에서 제2인자가 되어야 한다
나의 어머니와도 마찬가지다.
내가 좋은 아들이 되는 게 아니라 아내가 좋은 며느리가 되고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나의 어머니에게 착한 거짓말을 현명하게 해야 한다. 그게 나의 가정이 행복하며 그 걸 보는 어머니가 행복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