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다정 강사님과 함께한 러드 에스테이트(Rudd Estate) 테이스팅
뜨거운 여름날, 러드 에스테이트와의 첫 만남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던 한 여름. 특별한 와인 테이스팅에 다녀왔어. 코트 오브 마스터 소믈리에(Court of Master Sommeliers, CMS) 어드밴스드 시험을 준비하며 참석한 블라인드 테이스팅 세션.
이번에 테이스팅 한 와인들은 CMS 아메리카를 지원하는 쏨 파운데이션(Somm Foundation)의 주요 후원 와이너리인 러드 에스테이트(Rudd Estate)의 와인들도 포함되어 있었거든. 평소 궁금했던 곳이기도 했고,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들으며 와인을 맛보니 한 잔 한 잔의 더 의미있게 다가왔어.
오늘 이 특별한 테이스팅을 이끌어주신 분은 바로 임다정 와인 강사님이야. 강사님은 2023년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서 열렸던 CMS-A 어드밴스드 시험에서 비영어권 응시자 중 최초로 1등이라는 성적으로 합격하신 분이야. 정말 대단하지? 지금은 그녀의 파트너이자 역시 어드밴스드 자격을 보유하신 이시행 강사님과 함께 강남 신사동에서 PDT (Please Don't Tell)이라는 공간에서 CMS, 디플로마(WSET Diploma), 마스터 오브 와인(Master of Wine, MW) 등 최고 수준의 와인 시험을 준비하는 응시자들에게 와인 이론과 테이스팅을 교육하고 계셔. 다정 강사님은 어드밴스드 1등의 영광으로 2024년 나파 밸리에서 열린 러드 라운드 테이블(Rudd Round Table) 행사에 참여하셨어. 이 행사는 러드 에스테이트와 솜 파운데이션이 주최하는 장학 후원 행사인데 그곳에서 경험했던 내용과 와인들을 우리에게 직접 소개해 주셨어.
러드 에스테이트는 단순히 와인을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문 소믈리에와 음료 전문가들의 성장을 돕는 장학 사업에도 진심을 다하는 와이너리야. 그 후원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바로 '솜 파운데이션(Somm Foundation)'이라는 비영리 재단인데 이 둘은 매년 CMS Advanced 시험의 상위 득점자들을 '러드 장학생(Rudd Scholars)'으로 선발해서 나파 밸리로 초청하고 있어. 나파라는 장소 자체도 와인 애호가에게는 로망이지만, 그 로망을 공부와 실력으로 이뤄낸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라니 얼마나 밀도 있고 강렬했을지 상상해 보게 돼.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금전적 지원이 아니야. 러드 라운드 테이블에 선발된 장학생들은 나파 밸리의 러드 에스테이트에서 이틀간 집중적인 테이스팅 트레이닝과 모의시험, 멘토링, 네트워킹을 경험해. 시험 준비에 도움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강력한 동기부여와 기회를 얻는 자리인 거지. 게다가 모든 체류 비용이 지원된다는 점도 현실적인 부담을 줄여주고. 특히 스스로 공부하고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에게는 이런 기회들이 얼마나 강력한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됐어.
러드 에스테이트의 재배지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 하나는 나파밸리 중심부에 있는 '오크빌 에스테이트(Oakville Estate)' 다른 하나는 해발 1,600피트의 고지대에 위치한 '마운트 비더 에스테이트(Mt. Veeder Estate)'.
오크빌 에스테이트는 러드의 대표적인 플래그십 레드 와인을 생산하는 핵심 포도밭이야. Silverado Trail과 Oakville Crossroad가 만나는 동부 오크빌 벤치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은 화산암 기반의 코어스톤 토양 위에 세워진 56 에이커 규모의 밭으로, 강렬한 일조량과 건조한 기후 덕분에 집중도 높은 카베르네 소비뇽이 자라나지. 포도밭 북쪽은 서향의 완만한 내리막 경사면이고, 남쪽은 점토와 모래가 섞인 동향의 언덕으로 구성돼 있어서 구획별로 다양한 스타일의 포도를 얻을 수 있다고 해. 여기에 프랑스 품종인 카베르네 프랑, 프티 베르도, 말벡도 일부 심어져 있어 다양한 보르도 블렌딩이 가능해.
반면 마운트 비더 에스테이트는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포도밭이야. 해발 1,600피트에 위치한 이 부지는 단 16 에이커만이 포도밭으로 쓰이지만 이곳의 소비뇽 블랑과 세미용은 러드만의 독특한 화이트 와인을 만들어내. 숲으로 둘러싸인 동남향의 경사면에서 천천히 숙성되는 과실들은 낮은 당도와 생생한 산도를 유지하게 해 주고, 이 덕분에 마운트 비더산 소비뇽 블랑은 굉장히 세련되고 절제된 스타일로 완성돼. 이 포도밭은 사만다 러드의 어머니를 기리기 위한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지.
두 지역은 그 자체로 서로 다른 테루아와 에너지, 스타일을 갖고 있어서, 러드 와인의 다양성과 철학을 이해하는 데 꼭 함께 알아야 하는 포인트야.
오늘은 오크빌 빈야드에서 나온 레드와인 5가지를 시음했어. 특히 Crossroads by Rudd는 세컨드지만, 오크빌 레드의 매력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와인이었어.
1. Rudd Crossroads Oakville Cabernet Sauvignon 2005
블라인드로 마셨을 때 생떼밀리옹 블렌드라고 착각할 정도로, 미국 와인 특유의 과잉된 단맛 없이 세련되고 신선한 인상이 강했어. 서늘한 기후의 특징이 잘 드러난 2005 빈티지답게, 우아한 탄닌과 숙성에서 오는 복합적인 향이 인상 깊었지. 건조한 허브, 담배, 삼나무 같은 세컨더리 아로마도 은은하게 퍼지면서, 러드의 클래식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였어.
2. Rudd Crossroads Oakville Cabernet Sauvignon 2019
습한 겨울과 봄, 그리고 따뜻하고 긴 성장기의 조화를 보여준 2019 빈티지는 생동감과 구조감이 훌륭했어. 블랙베리, 자두, 은은한 허브 향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어릴 때도 접근하기 쉬운 스타일이지만 셀러링 가치도 충분히 느껴졌어. 마시면서 “아, 이게 요즘 나파의 클래식이구나” 싶더라. 젊지만 단단한 구조감 위로 Oakville의 에너지와 투명함이 잘 살아 있었어.
3. Samantha’s Cabernet Sauvignon 2016
창립자인 레슬리 러드(Leslie Rudd)의 딸, 사만다의 이름을 딴 이 와인은 러드의 정체성과 철학을 오롯이 담고 있었어. 이 해는 나파 전역에 비가 많이 내린 해였는데도, 신기할 만큼 균형감 있고 클래식한 스타일을 보여줬어. 짙은 보랏빛 컬러에 블랙베리, 드라이플라워, 철분, 커피 향까지 풍성하게 이어졌고, 둥근 탄닌과 깊이 있는 미네랄리티, 여운까지 모두 균형 있게 펼쳐졌지. 디캔팅 후에는 커피 로스팅, 철분, 타르, 흑연 같은 복합적인 변화도 감탄스러웠고. 오히려 이런 해에 더 러드다운 품격이 느껴졌달까.
4. Samantha’s Cabernet Sauvignon 2018
평년보다 건조한 해였지만 포도밭의 균형감은 오히려 더 좋아졌고, '10년 중 최고의 빈티지'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더라. 과실의 숙성이 탁월하고, 텍스처가 아주 매끄럽고 정제되어 있었어. 와인을 마시는 순간 입 안이 꽉 차는 느낌이 들면서도, 산미와 구조감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며 상당히 고급스럽고 우아한 인상이었어. 고운 탄닌과 에너지가 조화를 이루며, 셀러에 넣어두면 앞으로 더 기대되는 스타일이야.
5. Rudd Oakville Estate Red 2019
오늘 테이스팅의 하이라이트. 러드의 플래그십 와인답게, 깊이 있는 블랙체리, 자두, 카시스 아로마에 보라색 꽃, 흑연, 다크 코코아까지 등장하면서 진짜 복합미의 끝을 보여줬어. 특히 바닐라 빈, 아니스, 말린 허브 같은 향신료 계열의 뉘앙스가 잘 짜여 있었고, 입 안에서는 화산성 토양 특유의 미세한 미네랄 입자감이 느껴졌지. 그리고 이 와인은 특히 Earth 캐릭터가 강하게 느껴졌어. 땅의 온기와 깊이, Oakville 내에서도 러드가 지닌 독특한 테루아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지. 단단한 구조감과 긴 여운은 말할 것도 없고, '러드의 정점'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렸어.
전체적으로 숙성 잠재력이 확실히 느껴지는 와인들이었고, 지금 마셔도 충분히 좋지만 앞으로 10년, 20년을 셀러링 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거야. 특히 나처럼 CMS 시험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고품질 와인을 블라인드로 테이스팅 해본 경험은 이론을 넘어선 공부였어.
솜 파운데이션(Somm Foundation)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비영리 재단으로, WSET, CMS, MW 같은 와인 교육기관의 응시자들에게 장학금과 교육 여행, 멘토링 등을 지원하고 있어. 지금까지 약 160만 달러 이상이 장학금으로 지급되었고, '러드 라운드 테이블(Rudd Round Table)'처럼 수준 높은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지. 이런 프로그램이 가능한 이유는 생산자들의 자발적인 후원 때문이야. 러드 에스테이트는 그 중심에 있는 대표적인 후원자고, 단순히 와인을 잘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와인을 다루는 사람들의 성장을 함께 도모하고 있다는 점이 감동적이었어.
소믈리에 일을 막 시작했을 때였어. 어떻게 와인 공부를 해야 할지, 물어볼 사람도 많지 않았지. 일 끝나고 뭘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딱히 길이 안 보이던 시기였거든. 그러던 중 선배들이 “CMS라는 국제 자격 시험이 한국에 들어왔는데 너도 한번 해봐” 하고 슬쩍 말을 꺼내셨어.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어. 그래서 ‘일단 뭐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그냥 도전하게 됐지.
그때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그 선택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셈이야. 시험을 준비하면서 만난 사람들, 함께한 시간들과 그 안에서 나눈 경험들이 오늘처럼 다시 그 시절을 돌아보게 만들어.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서비스 교육에 투자하려는 기관이나 기업들이 점점 생기고 있긴 한데, 아직은 뿌리가 깊거나 체계적인 시스템이라고 하긴 어려워. 그래서 이 쏨 파운데이션 같은 장학 시스템이과 교육 네트워크가 더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것 같아. 배우는 사람이 성장하고,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를 키워내는 이 순환 구조 자체가, 결국 ‘좋은 사람을 키우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 주변에도 이런 기회가 더 많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진심을 담아 공부하고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해 볼 수 있는 환경이 있다면. 오늘의 이 테이스팅이 그 시작점이 되어주기를 바라면서, 한 잔의 와인에 담긴 이야기와 사람의 가능성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되는 하루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