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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센트 Oct 30. 2022

(6)

“그냥 오갈 데 없는 애들 돌봐주고 있어요. 밥 주고, 물 주고.”


해원은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말과는 달리 꽤 본격적인 급식소가 차려져 있었다. 밥그릇 앞으로 다가간 고양이가 그릇에 머리를 박고 사료를 와작와작 먹기 시작하자 아주머니는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휘익 열렸다 닫히는 강화유리문 위로 큼지막한 입체 간판이 보였다.


'영내과.' 올드해 보이는 외관과는 상반된 상호명이었다. 연식이 느껴지는 건물의 한 켠에는 작은 화단이 예쁘게 꾸며져 있었는데, 고양이 무료 급식소와 불협화음 같으면서도 묘하게 매력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찹찹대는 소리가 들려와 돌아보니 어느새 식사를 마친 고양이가 어항처럼 커다란 물그릇의 물을 마시고 있었다. 얼큰하게 물을 들이켠 녀석은 근처에 피어 있는 꽃에 젖은 턱을 비비듯 슥 닦았다. 그러곤 늘어져라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더니 엉덩이를 한들한들 흔들며 풀숲 속으로 사라졌다. 멀어지는 치즈색 덩어리를 멍하게 보던 해원은 문득, 마당에는 꽃과 고양이가 꼭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떠올랐다. 그녀는 내내 켜놓았던, 목적지가 설정된 지도 어플을 끄고 발길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문을 밀고 들어서자 데스크에 앉아 있던 직원이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해원은 그녀를 잠시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여기 혹시 사람 구하나요?”

“네?”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직원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떻게 아셨어요? 아직 광고 안 냈는데….”


직원이 얼떨떨하게 말하자 해원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로 해원의 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수능 볼 때도 찍는 것마다 정답 적중률 95%에 달하는 기염을 토해 모교의 전설로 남았다. 


“제가 지원하고 싶은데, 면접 볼 수 있나요?”

“아, 네. 잠시만요.”


간호사는 아리송해하면서도 내선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작은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하던 그녀는 수화부를 막고 고개를 들었다.


“IV 할 줄 아세요?”

“네.”


해원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신입 시절 그녀 또한 여느 간호사들처럼 환자들에게 정맥 주사를 놓을 때마다 혈관 찾느라 애를 먹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뱀파이어라고 불리던 채혈실 에이스 선생님에게 뇌물용 빵을 열심히 진상하고 비법을 전수 받은 후 그녀는 다시 태어났다. 


“네, 알겠습니다.”


짧게 통화를 마친 직원이 데스크 왼편의 문을 향해 팔을 뻗었다. 문 위쪽에는 진료실이라는 표찰이 붙어 있었다. 


“바로 들어가시면 돼요.”


노크 한 번 해 주시고요. 부연이 뒷머리에 따라붙었다. 구부린 가운뎃손가락을 문 위에 두 번 두드리자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반백의 의사가 앉아 있었다. 줄곧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해원이 겪어 온 의사들은 대체로 말이 짧고, 책임감이 강하고, 늘 피곤해했으며, 일방적인 소통 방식을 선호했다. 그녀는 짧게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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