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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센트 Oct 30. 2022

(5)

“열 군데나 넣으려고요?”

“그럼요.”

“이력서는 언제 다 준비해 왔대?”

“기본이죠.”


해원은 감탄하는 그를 향해 이력서 봉투들을 부채처럼 촥 펼쳐 보였다. 직장 다닐 땐 사직서를, 구직할 때는 이력서를 가방에 항상 품고 다녔다. 퇴직은 신중하게, 구직은 공격적으로가 그녀의 신조였다. 사장은 아주 야물딱지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후딱 다녀와요.”

“다 붙어버리고 올게요.”

“오는 길에 다른 부동산 들르면 안 돼! 바로 와야 해!”

“제가 언제 올 줄 알고요. 퇴근 안 하세요?”

“집에 안 가고 기다릴 거야!”

“알았어요.”


마치 처음 외출하는 손주를 단속하는 할아버지처럼 말하는 그에게 캐리어를 볼모로 맡겨두고 복덕방을 나섰다.


메인도로인 중앙로는 좁은 2차선인 탓에 차들이 굼벵이처럼 움직였다. 인도도 좁아서 사람 셋이 나란히 걸으면 언젠가  명이 뒤로 빠지게 되는 구조였다. 차가 다니는 길도, 사람이 다니는 길도 불편했지만 불친절하지는 않았다.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도 노인들이 길을 건너면 택시들이 차를 세우고 기다렸고, 행인들은 떠돌이 개에게 길을 비켜 주었다. 약간 무정부 상태 같은 느낌도 있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면접지를 향해 가면서 설탕 소리가 사각사각 나는 꽈배기집을 눈여겨 보고, 옷가게 쇼윈도를 구경하며 느긋하게 걷던 그녀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가방집’. 직관적인 간판이 단번에 눈길을 끌었다. 강렬한 붉은 색채가 옆에 있는 정육점과 기묘하게 어우러졌다. 쇼윈도 너머로 주렁주렁 매달린 고깃덩이와 가방들을 지나치는데 사잇길로 웬 병원이 보였다. 가방 가게와 정육점 사이에 있는 그 병원은 풀숲 뒤에 숨겨진 비밀의 화원처럼 그렇게 나타났다.


도로에서 쑥 들어가 있는 병원 앞에는 주차 공간이 드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거무죽죽한 아스팔트 바닥 위에 웬 누룽지처럼 눌어 붙은 물체가 보였다. 치즈색 줄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주차장 한복판에 드러누워 있었다. 탐스럽게 출렁이는 분홍빛 뱃살과 하얀 털이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아저씨처럼 길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는 작은 짐승은 시선을 강탈했다.


“아이고, 귀리야.”


어디선가 딸랑, 하는 종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달려왔다. 체격이 작고 마른 아주머니였다.


“이러다 차 들어와서 큰일 나면 어쩌려고 그래. 일어나.”


아주머니가 타박하자 고양이는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몸을 뒹굴 굴려 일어났다. 그러곤 하이힐을 신은 것처럼 발끝을 세우고 아주머니의 다리에 궁둥이를 비볐다. 지팡이처럼 꼬부라진 꼬리 끝이 바르르 떨렸다. 치즈색 털뭉치가 아양 떠는 모습을 멍하게 보던 해원이 물었다.  


“여기서 키우는 고양이에요?”

“아, 키우는 건 아니고…….”


아주머니는 고양이가 종아리에 이마를 비비적대자 말을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고양이를 바라보는 눈길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그건 꽤 인상적이었다. 콧등까지 덮은 마스크 너머로도 선한 인상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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