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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센트 Oct 30. 2022

(4)

“요즘 젊은 사람들은 교차로 안 보나? 여기 다 나와 있는데….”

“아날로그하고 좋네요.”


사장은 왜인지 섭섭해하는 눈치였다. 회상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온 해원은 덤덤하게 대꾸했다. 그녀는 황제 찹쌀떡 광고를 가리고 있는 양파와 춘장 접시를 치우고 소파에 앉았다. 오래된 가죽 소파에서 뿌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보자, 보자….”


사장은 작고 동그란 돋보기 안경을 쓰고 손가락에 침을 묻혀 페이지를 넘겼다. 해원은 슬로 모션처럼 느릿느릿 넘어가는 신문지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무료하게 눈을 굴리던 중 탁자 가장자리에 놓인 사탕통이 보였다. 추억의 사랑방선물 캔디. 해원은 반가움에 통을 집어들었다. 


“사탕 먹어도 돼요?”

“그러믄요. 초록색만 빼고 먹어요.”


사장은 자비롭지만 취향은 확고한 모양이었다. 플라스틱 뚜껑을 열자 색색의 알사탕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었다. 해원은 그중 하얀색을 골라 입에 쏙 넣고 도록도록 굴렸다. 입 안에 파인애플맛이 달달하게 퍼져나가는 동안 복덕방 사장의 손은 구인구직란에 무사히 도착했다. 


“자, 골라 봐요.”


병원 밭이라더니 과연 의료종사자 구인글이 빼곡했다. 한 페이지에 와글와글 들어찬 네모칸들은 아파트를 연상시켰다. ‘간호사 및 간호조무사 구함’ 구인 공고 밑에는 근무 시간과 업무 등 채용 정보가 짤막하게 쓰여 있었다. 해원은 눈을 가늘게 뜨고 깨알 같은 글씨에 초점을 맞췄다. 


“백제정형외과….”

“거기 원장 첩이 셋이야.”

“첩이요?”


손끝에 걸리는 글자를 소리 내어 읽는데 옆에서 사장이 촉새처럼 끼어들어 코멘트했다. 육성으로는 처음 들어보는 고대의 단어에 귀를 의심하며 반문하자 그가 고개를 냉큼 끄덕였다. 안경 너머 눈에 생기가 감돌고 초롱초롱하게 반짝였다. 예전에는 부동산이 동네 사랑방이었다더니 과언이 아닌 모양이다. 


“그 사실이 지금 저와 무슨 상관이…?”

“병원이 그만큼 잘 된다는 거지. 철철마다 뽀나스도 잘 준더다라구.”


사장이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붙이며 윙크했다. 해원은 지원 의지가 모래처럼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군요.”

“응. 트로트 가수, 노래방 주인, 막걸리집 주인…. 다양해, 아주. 특히 막걸리집 주인양반이 말아주는 도토리국수가 맛이 그냥….”

“원장님이 흥이 많은 분이신가 봐요.”


그녀는 애써 침착하게 거들고 서둘러 손을 움직였다. 체스말처럼 옮겨 간 손가락은 어느 가정의학과 구인 공고에 머물렀다. 


“동진호… 여기는요?”

“거기? 거기는 아주 꿀이래요. 한번 들어가면 웬만하면 말뚝 박으니까 자리가 나오질 않어.”

“흠…. 무는 호랑이는 뿔이 없는 법이죠. 단점은요?”

“대신 아침 일찍 시작해. 7시?”

“어우.”


7시면 꼭두새벽이다. 3교대 근무 당시 인파에 떠밀리며 출근하거나 떠오르는 해를 보며 퇴근하던 시간이었다. 해원은 미련도 없이 다음 구직처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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