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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센트 Oct 30. 2022

(3)

“안녕하세요.”

“응? 아이고, 어서 오세요.”


마침 점심시간이었는지 탁자에 신문지를 깔아 놓고 짜장면을 먹고 있던 사장이 해원을 보고는 면발을 힘차게 후루룩 빨아들였다. 그는 서둘러 입가를 훔치고 일어섰다. 


“어…. 식사 중이셨나 봐요.”

“예, 예. 냄새가 좀 나지요?”


사장이 머쓱해하며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손부채질을 했다. 해원은 괜찮아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캐리어를 세웠다. 묵은 종이 냄새와 뒤섞인 고소하고 기름진 향이 나쁘지 않았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집 좀 알아보려고 하는데요.”

“집이야 많지요. 전세요? 월세요?”

“음… 월세요.”


그가 휴지로 입을 싹싹 닦아 내고 본격적인 접객 태세를 갖추는 동안 해원은 눈을 위로 굴리며 캐리어 손잡이를 밀어 내렸다. 딱.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났다. 


이방인은 희망 사항을 꼼꼼히 나열했다. 보증금과 월세 최대 한도는 이만큼, 방이 두 개는 있었으면 좋겠지만 한 개도 나쁘지 않고, 주방이 너무 좁지 않았으면 좋겠고, 창턱에 둘 화분 잎에 햇살이 고일 만큼의 채광은 있어야 하고…….


“그리고… 아, 오늘부터 들어갈 수 있는 곳이요.”

“오늘부터?”


진지하게 경청하던 사장의 눈썹이 훌쩍 올라갔다. 생각해 둔 후보지가 몇 개는 날아가는 표정이었다. 


“직장이 어느 쪽인데요? 암만 시내가 손바닥만하다지만 뭐니뭐니해도 직주근접이 최고니깐.”

“아직 안 구했어요.”

“뭐요?”


사장이 음이탈을 냈다. 황당해하는 그에게 해원은 뭐 문제 있냐는 듯 무표정으로 응수했다. 그러자 그는 재밌는 아가씨네, 하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내내 사무적이던 얼굴에 활기가 돌고 눈동자가 흥미로 반짝였다. 


“무슨 일 해요? 여기 젊은 사람들이 일할 데가 많지 않을 텐데.”


틈새 같은 정적이 흘렀다. 해원은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벌렸다. 


“간호사요.”

“이야, 딱이네. 이 동네에 병원밖에 없는데.”

“그래요?”

“그럼. 아주 병원 밭이라 주변 읍면에서 다 모여들거든.”


사장은 호방하게 외치며 탁자 위 짜장면 그릇을 옆으로 치웠다. 그 밑에 깔려 있던 신문의 첫면이 드러나고, 대문짝만한 핫핑크색 로고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교차로?”


큼직하고 투박한 로고는 해원을 중학생 시절의 기억 속으로 퐁당 빠뜨렸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을 머금는 순간 유년 시절로 돌아간 마르셀처럼 그녀는 어느새 교복을 입고 상가 길목에 서 있었다. 학원 가는 길 횡단보도 옆에는 커다란 상자 같은 길거리 매점이 있었는데, 공부가 힘든 날이면 복권을 한 장씩 사고는 했다. 그 옆에 늘어선 배포대에 늘 넉넉하게 꽂혀 있었던 교차로는 벼룩시장, 화제신문과 함께 생활정보지 3대장이었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의 알록달록한 배포대를 습관처럼 보면서도 한 번도 꺼내 읽어 본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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