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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센트 Oct 30. 2022

(7)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창문에서 햇살이 환하게 스며 들어왔다. 그 아래 나란히 놓인 고풍스러운 등나무 의자에는 오래된 가구 특유의 결이 새겨져 있었다. 짹짹거리는 새 소리가 한낮의 여유를 만들어 냈다. 창틀 위로 뛰어오른 고양이 한 마리가 창문을 기웃대며 존재감을 어필하다가 원장이 눈길도 안 주니 토라진 듯 다시 폴짝 뛰어내려갔다. 새순이 돋은 나뭇가지가 바람결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색색의 꽃이 나비떼처럼 하늘거렸다.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코 끝에 감도는 난향이 그윽했다. 해원은 눈을 길게 감았다 떴다. 


“나는 오래 일할 사람을 구하는데.”


이력서를 내려놓은 원장의 첫마디는 꽤 쌀쌀맞은 편이었다. 해원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제가 금방 그만둘 사람으로 보이나요? 왜죠?’를 표정으로 전달했다. 


“너무 오바스펙이라.”


구수한 영어 발음이 친근했다. 원장의 손가락 끝이 이력서의 학력사항을 거쳐 경력사항의 근무처를 가리켰다. 해원은 미간에 힘을 풀고 긴장한 어깨를 툭 늘어뜨렸다. 하긴, 열심히 살았다. 너무 열심히라 문제였지만. 


“나이도 너무 어리고….”


해원은 올해로 서른이었다. “너무 어리다”는 평가는 스물다섯을 넘긴 이후로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기분이 묘해진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손톱 거스러미를 뗐다. 


“여기 사는 사람도 아니네?”

“집은 오늘 구할 예정입니다.”


해원은 고개를 번쩍 들고 냉큼 대답했다. 원장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미간을 좁히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서둘러 부연했다.


“원래는 살 곳을 먼저 정하려고 했는데, 부동산에서 취직부터 하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누가. 사장이?”

“네.”


그가 픽 웃었다. 어이없지만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원장은 이력서를 옆으로 밀어두고 손을 모아 깍지를 꼈다. 


“결혼은 했어요?”

“안 했습니다. 할 생각도 없고요.”


의식을 거치지 않고 나온 답변은 지나치게 방어적이었다. 동시에 과하게 설명적이었다. 그동안 축적된 경험은 해원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도 별수 없었다. 비굴할지언정 꽃이 만개한 화원에서 고양이가 낮잠을 자는 이 요상한 원더랜드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래요? 우린 결혼한 사람 더 좋아하는데.”

“그럼 오늘부터 제 반쪽을 찾아보겠습니다.”


해원이 호떡 뒤집듯 태세를 전환하자 그는 불가항력에 가까운 웃음을 터뜨렸다. 


“재밌는 친구네.”


실소 섞인 평은 칭찬인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여느 때보다 감미롭게 들렸다. 제가 한 재미 합니다. 그녀는 자부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해원은 감이 좋았다.


합격이다.


“언제부터 나올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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