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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센트 Oct 30. 2022

(1)

1. 짜장면


내릴 역을 지나친 것은 실수가 아니었다. 해원이 내려왔던 계단을 도로 올라섰을 때 증기기관차의 수증기가 빠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열차의 문이 닫혔다. 문을 다시 열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기차는 익산역을 지나가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느릿느릿 움직이던 풍경이 점점 빠르게 지나갔다. 입석 좌석을 내리고 엉덩이를 안착시킨 아저씨가 앞에 선 해원을 경계심 어린 눈초리로 훑었다. 고단한 중년의 자리를 노릴 생각이 없었던 해원은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객실로 돌아갔다.


“너 진짜 갈 거야?”


블루투스 이어폰에서 친구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건너왔다. 용산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광명, 천안아산, 오송, 공주, 익산을 지나친 시점에서 묻기엔 좀 늦지 않았나, 해원은 생각했다. 


“이미 왔어.”

“야, 내가 미국 가자고 했지 언제 시골 가라고 했어!”


아직 시골 아닌데. 창밖으로 지나가는 잿빛 콘크리트 숲을 보며 해원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한동안 잔소리가 이어졌다. 


“너 지금 너무 지쳐서 그래. 피곤할 때 의자 사면 안 된다잖아. 푹 쉬면서 다시 생각해 봐. 응?”


설득하는 소리를 한 귀로 흘려들으며 눈을 한 바퀴 굴렸다. 허공에서 맴돌던 시선이 TV에 가 닿았다. 객실 복판에 걸린 모니터에는 구급차에서 응급환자가 실려 나오는 화면이 송출되고 있었다. 그 위로 ‘아산병원 간호사 근무 중 뇌출혈 사망… “50살 넘어도 과로 근무”’ 헤드라인이 지나갔다. 


“서울 한 번 나가면 다시는 못 돌아온다잖아, 해원아.”


그래서 나오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해원이 퇴사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KTX 열차 노선도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따끈따끈한 프린터 잔열이 남은 노선도를 방바닥에 펼쳐놓고 눈에 보이는 글씨를 따라 읽었다. 경부선, 호남선, 경전선, 전라선, 강릉선, 중앙선, 중부내륙선…… 많기도 하다. 빨간 색연필을 집어든 해원은 대동여지도를 그리는 정약용처럼 신중하게 노선도를 살피기 시작했다. 


‘중부내륙선? 역이 다섯 개밖에 없네. 탈락.’

‘중앙선보단 강릉선이 괜찮아 보이는데?’


이상형 월드컵을 하듯 노선 두 개를 매치시키고 그중 하나를 골라냈다. X 표시로 하나씩 지워나간 끝에 최종 후보는 경부선과 호남선으로 추려졌다. 색연필 뒤축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잠시 고민하던 해원은 문득 예전에 한 트로트 가수가 전라도 사람들은 머리에 뿔이 나 있을 줄 알았다고 했던 게 생각나 호남선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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