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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 다시 걷기 시작하다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by 햇빛 윤

간절히 살고 싶었지만,

사람답게 살 수 없었다.


주사 부작용의 트라우마

내 몸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두렵게 만들었다.

심지어 음식조차 내 몸이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도 얼굴이 사색으로 변해

방으로 기어 들어가는 날이 잦아졌다.


원래 있던 파란 핏줄마저도,

주사 때문에 생긴 보랏빛 핏줄처럼 보였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조차 공포로 다가왔다.

나는 내가 나이기를 거부하는 기분이었다.


정신병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늘 애써 억눌러온 판도라 상자처럼,

내 안에 숨어 있던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를 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충분히 내려놓아도 됐는데 내려놓지 못하자,

몸이 나에게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며 벌을 주는 듯했다.


나는 속에서 썩어 가고 있었지만,

가족들의 시간은 아무렇지 않게 흘렀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 한마디조차 해주지 않았다.

그럴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늘 기대했고 또 상처받았다.


동생은 내 정신병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쟤 미쳤잖아. 또라이잖아.”


엄마는 “너를 자극하고 싶지 않아”라는

말과 함께 나를 방임했고,


아빠는 내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만 좀 해!!"라며 화를 냈다.


그럼에도 나는 동생이 코로나 예방접종을 맞으면

나처럼 아프게 될까 봐 필사적으로 막았다.


동생은 지금도 가끔 철없이

“네가 날 살렸잖아”라고 말한다.


내 아픔은 개인적인 것이었고,

가족은 한결같이 무심했다.


그럼에도 나는 미련하게도 그들을 챙기고,

또 바라고 자책했다.


어느 날, 눈에 큰 핏줄이 생긴 걸 발견했다.

불안과 공황장애로 시달리던 나는

시력을 잃는 건 아닌지 절망에 쌓여 안과로 달려갔다.


의사는 차분히 말했다.

“원래 있던 핏줄입니다.”

그 말조차 믿기 어려운 불안감이 남았다.


샌님이 과거에 찍어둔 사진의 눈동자를 확대해 보여주었다.

원래 있던 핏줄이었다.

번개를 맞은 기분이었다.

번개가 ‘정신 차려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그 순간부터 나는,

많은 것이 내 불안과 두려움에서 비롯된 망상임을

조금씩 인지하기 시작했다.


나는 집 앞을 나와 벽을 짚고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걸었다.

내 멱살을 잡고 싸우듯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밥도 어떻게든 억지로라도 먹으려고 노력했다.


쪽잠을 자다 불안에 깨어,

불을 끄지 못한 채 앉아 있던 밤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누워서 제대로 잠드는 법을 배웠다.

나를 위한 예쁜 잠옷도 샀다.


작은 변화가 희망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와의 싸움이 지속되고 있을 때

엄마가 코로나에 걸렸다.

내 면역이 한참 떨어진 상태였기에,

나는 고모의 도움으로 잠시 피신을 갔다.


격리 중이던 내게 엄마가 전화를 했다.


“병원...에... 못... 가...겠어.”


그 목소리는 거의 숨이 끊어질 듯 약했다.

나는 무작정 집으로 달려갔다.


신발도 제대로 벗지 못한 채 안방으로 들어가 보니,

아빠와 동생이 있었다.


엄마는 내가 오자마자

양말을 신겨 달라며 부축을 요청했다.

그 순간 나는 165cm에 38kg밖에 되지 않는 내 몸이 생각났다.


왜 엄마는 나를 불렀을까.

왜 면역력이 약한 나를 앞에 두고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기침을 한 걸까.


동생은 멍하니 보고만 있었고,

아빠는 “엄마가 마스크 안 썼으니 조심해라”라고 말했다.


모두가 알고 있었을 거다.

내가 코로나에 옮을 거라는 사실을.

그런데 왜 내가 엄마의 구토를 받게 했을까.


결국 나는 코로나에 걸렸고,

저혈당 쇼크 위험으로 다시 입원했다.


1인실 병실은 감옥 같았다.


악마는 속삭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서 왜 또 엄마를 도왔어?’

천사도 말했다.

‘그래도 엄마가 아프다는데, 딸이 도우는 게 맞아.’


엄마는 다시는 코로나에 걸리기 싫다며 마스크를 쓰고

반찬만 가져다주며 자리를 피했다.

이제 와서 마스크를 쓰는 엄마의 모습은

나에게 '모순' 그 자체였다.


나는 생각했다.

만약 내가 엄마에게 옮은 코로나로 죽었다면,

엄마는 나에게 미안해했을까.


그리고 두 번째 병실 감금에서도 샌님은 함께 있었다.

그는 병실 바닥에 당연하다는 듯이 누워있었다.


늘 하던 말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 옆에만 있어줘.”


이때부터 였을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사람과

가족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겨내야만 했다.

살기 위해, 내가 바라는 삶을 갖기 위해,

독한 마음으로 결심을 다졌다.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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