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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가족일까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by 햇빛 윤

나는 청혼 반지를 낄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아니, 그의 고백을 받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전에 만났던 사람처럼 내 그림자가 두려워

나를 떠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샌님 또한 나와 닮은 상처를 안고 있었다.

우리 둘은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어린아이에 멈춰있었다.


내 상처도, 그의 상처도 서로가 보듬어 줄 순 없었다.


나는 서로의 그림자를 마주할 때마다

이별을 고했다.

비겁하게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늘 자신 있게 말했다.

"나는 할 수 있어. 이겨낼 수 있어."


가족들의 그늘 속에서도 버티고 이겨내려는 그의 모습은,

나에게는 마치 나의 마음속 거울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를 자주 나무랐다.


사실은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너무 닮아버린 그의 모습 속에서 나 자신을 본 것 같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여전히 그림자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죽음의 고비’가 닥칠지도 모른다는 걸 모른 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보육교사였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예방접종을 맞아야 했다.


새벽이었다.

아직도 생생한 죽음의 기억이다.


누군가 내 목을 조르는 듯

숨을 쉴 수 없었다.

워치에 찍힌 심박수는

곧 심장이 터질 듯 치솟아 있었다.


안방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살려줘…”


목에서 겨우 흘러나온, 죽음의 신호였다.

뉴스에서 봤던 부작용과 사망 소식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엄마는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내 손을 붙잡고

아빠 차에 나를 태워 응급실로 향했다.


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 순간, ‘그래도 나를 딸로 생각하는구나’ 싶었다.


보통 죽을 고비가 다가오면

그동안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는데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딸로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은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다시는 엄마 손을 잡아본 적이 없다.

여느 모녀들처럼 팔짱을 끼고 쇼핑을 가거나

나란히 앉아 데이트하는 건

우리 모녀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일이었다.


나는 급성 부정맥 진단을 받았다.

코로나 백신 부작용을 인정받았지만,

해줄 수 있는 치료법은 없다는 말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현재 방법은 없어요.”

“코로나 부작용에 대해서는 우리도 몰라요.”

“비슷한 환자가 너무 많아요. 돌아가세요.”


그 말들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었다.


처방받은 새끼손톱보다 작은 하트 모양의 알약이

한없이 작아진 내 마음 같은데

심장은 시도 때도 없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곧 죽을 것 같았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 같았다.


나와 닮은 아이들에게도 사랑을 베풀 수 없었다.

보듬어줄 힘이 없었다.


어린이집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집을 다니며 나와 닮은 아이들에게

원 없이 애정을 베풀 수 있는 원장이 되고 싶었는데

내 꿈은 또 망가져버렸다.


도대체 몇 번째인지

'나는 꿈을 꾸면 안 되는 사람인가 보다'

생각이 들었다.


노란색 어린이집 차만 봐도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늘 매몰차게 밀어내던 샌님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병들고 무너진 순간 그는 곁을 지켜주었다.

그는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을 했고,

내 곁에서 나의 보호자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를 손에서 놓아버렸다.


심지어 내가 입원해서

불안과 공황 발작으로 고통받을 때조차

여행을 떠나 삶을 즐거워했다.


전화 속 엄마와 아빠의 웃음소리는

내 팔에 꽂혀있는 바늘보다 더 욱신거렸다.


나는 침대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화장실까지 기어가는 것도 숨이 막혔다.

심박수가 올라 목을 조이는 듯했다.


내 모습은 걸어 다니는 산송장 같았다.

내 삶은 끝난 것만 같았다.


나는 병실 한쪽에 누워 있는 샌님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가 잠든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누가 가족일까.’


어렸을 적 고열로 앓을 때

엄마가 물수건으로 이마를 닦아주던 기억,

아빠 등에 업혀 병원 계단을 뛰어올라가던 기억.


나는 아직도 그 장면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 손길이 다시 돌아오길 바란 건 아닐까.


그런 기억에 매달려,

여전히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갈망하고 있다.


하지만 그 자리를 지킨 건 엄마, 아빠가 아니었다.

늘 외면하던 샌님이었고,

그는 끝내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


늘 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간절히 살고 싶어졌다.


아니, 사실 나는 원래부터

늘 잘 살고 싶었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못하게 된 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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