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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섞인 동거인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by 햇빛 윤

시작하기 전에

당신에게, 그리고 나에게


몇 번이나 죽고 싶다고 외치던 과거의 나를 돌이켜보면,

지금 이렇게 잘 살아 있는 내가 참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이야기를 읽는 당신도,

가끔은 고구마를 한 박스를 통째로 먹은 기분으로

책을 덮고 싶을 때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 책을 손에 든 이상,

어쩌면 우리는 비슷한 감정을 나눠본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는 자꾸만 되묻는다.

“나도 그랬을까? 그들은 왜 그랬을까?”

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며 때론 답답하게 만든다.


하지만 결국 남는 건 하나 같다.

아마도 우리 모두는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다치게 한 방식도,

그들만의 어색하고 서투른 사랑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각자 인정받고 사랑받고자 했던 욕심이 빚어낸 일들.

그럼에도, 부탁 하나 던지고 싶다.


읽는 지금, 먼저 당신 자신을 돌아봐 줬으면 좋겠다.




나는 술독에 빠져 살았다.

주말에 집에 있는 것이 너무 불편해 무조건 약속을 잡았다.

약속이 없는 날에도, 마치 약속이 있는 척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갈 데도 없었기에 차 안에 누워 있기도 했고,

집 근처 놀이터에 앉아 술을 마시며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했다.


집 문 앞에는 종종 압류 관련 등기가 날아왔다.

하얀 봉투에 동생 이름이 있으면

심장이 뛰고 손부터 떨리기 시작했다.


동생이 대출을 받아 갚지 못하자 은행들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통보였다.

그 과정에서 처음 알게 된 단어가 있다.


'핸드폰 깡'

신용을 담보로 고가의 휴대폰을 개통한 후,

되팔아 현금을 마련하는 수법이다.


동생은 이 수법을 거리낌 없이 반복했다.

동생 이름으로 개통된 휴대폰은 늘 여러 대였다.

한 대를 다 갚으면 다시 한 대가 생겼다.


동생은 돈을 쉽게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을 저질렀다.


그건 끝없는 고리였다.


압류 관련 등기가 날아온다.

엄마는 아빠에게 비밀로 한다.

엄마가 몰래 갚다가 아빠와 싸운다.

엄마가 아파서 아빠는 동생을 혼내지 못한다.

동생은 또 대출을 받는다.


이 지옥 같은 사이클은 끊임없이 반복됐다.


우리 가족은 언제나 원인을 알고 싶어 했다.

동생이 왜 이렇게 사고를 치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들의 돈에 손을 댔을 때,

흔히들 말하는 스포츠토토, 불법 도박이 원인이었다.


혹시 똑같은 이유냐고 되물어봤지만

동생은 늘 묵묵부답이었고,

결국 "불법 도박이 아니다"라는 말만 남겼다.


동생은 늘 한결같았다.

며칠 방에 쥐 죽은 듯이 숨어 있다가

또다시 아무렇지 않게 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잘못하지 않아도 늘 내 탓이었는데,

동생은 큰 잘못을 저질러도 감싸줬다.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을 때면,

음식이 아니라 눈칫밥을 먹었다.


아니, 눈칫밥을 먹는 것보다

그보다 더 질기고 삼키기 힘든 건 공기 속에 흩뿌려진 긴장감이었다.


동생이 사고를 치면,

동생이 없는 자리에서 아빠는 늘 같은 말을 했다.


“똑같은 년 놈들.”


그 말은 동생이 아니라 나를 향했다.


엄마와 아빠는 정작 동생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동생 대신 상처를 받아주는 방패막이였다.


동생이 늘 미울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 가족의 본질적인 문제는 동생이 아니라,

엄마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말했다.

“상담을 받자.”


전문가에게는 엄마, 아빠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지 않을까

전문가의 말이라면 엄마, 아빠가 귀 기울여 주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었다.


아빠는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지만,

엄마는 갑자기 못 들은 척 빨래를 정리하다가 중얼거렸다.


“나를 남에게 판단 받고 싶지 않아.”


매우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 한마디에 내 마음을 누군가 쥐어짜는 것 같았다.


엄마도, 아빠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본인들이 잘못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나와 동생에게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주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끝내 상담을 받지 않았다.


나는 혼자 심리 상담을 받았다.

스스로 선생님을 찾아갈 정도로, 내 마음은 늘 갈 곳을 원했다.


여러 번의 상담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중 가장 슬프게 남아 있는 말이 있다.


“부모의 사랑은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첫 번째는 원초적인 사랑, 즉 관심과 애정.

두 번째는 물질적 사랑이에요.

그런데 원초적인 사랑은 받을 수 없는 가족 관계네요.

물질적 사랑이라도 받으세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물질적 사랑조차 받을 수 없는 가족이었으니까.


그리고 전문가가 본 우리 집 가족 구조는

말 한마디에 정의 내려졌다.


“당신이 사실상 집안의 ‘엄마’ 같군요.

실제 엄마보다 모성애가 강한 사람 같아요.”


다시 한번 돌이켜보니

동생 일을 엄마, 아빠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결했다.

그게 정말 모성애였을까


아니면 같은 자식으로서 안타까웠던 걸까


상담실의 조용한 공간 속에서

상담을 받으러 간 내담자라면 울어야 한다는 듯이

늘 앞에 놓인 갑 티슈의 휴지를 뽑았다.

나는 늘 울었다.


상담을 받으면

엄마와 아빠에게 사랑받을 방법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깨달았다.

사랑받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그건 마치 친자 검사를 받고

“친자가 아닙니다”라는 결과지를 받은 기분이었다.


방패막이의 친자 검사는 실패했다.

나는 단지 피 섞인 동거인일 뿐이었다.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연재 브런치북]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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