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첫사랑과 헤어지기 전,
이미 잦은 다툼으로 지쳐 있던 나에게
동생이 다툼의 이유를 물어왔다.
나는 답했다.
“너 때문에 싸웠어.”
그 말에 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려 당황했다.
“나 때문에 싸우는 게 이해가 안 되는데? 너네가 이상한 거 아냐?”
나는 더 화가 치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과 헤어진 이야기를 하면
가족들이 이번에는 내 아픔을 이해해 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또 한 번의 착각이었다.
엄마에게 이별을 전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내게 처음으로
'가족들과 연을 끊어야겠다'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네가 그렇게 만든 거야.”
“다른 지역 나가서 살아.”
“창피해서 안 되겠다.”
“우리 생각도 좀 해줄래. 제발?”
내가 방금 도대체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싶었다.
엄마의 말은 슬로 모션처럼 내 귀에 박혔다.
아니, 마음에 박혔다.
이별의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감정에 덮여버렸다.
또, 우리 집 식탁이었다.
저주받은 식탁.
아니면 내가 저주받은 걸까.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결혼이 깨진 딸에게 집을 나가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엄마는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럼 내가 얼마나 아플지도 알았을 것이다.
아니, 모르는 건가.
정말 모르는 건가.
내가 무슨 드라마에서 나오는
명문가의 결혼을 파투 낸 딸도 아니었는데.
이게 집에서 쫓겨날 이유인가.
나는 가족 같지 않은 가족이라는 굴레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건데
아니, 엄마, 아빠, 동생이 더 소중했던 건데
내 마음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정말 마음이 타들어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느껴졌다.
그 순간의 상처는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았다.
나는 또 집을 뛰쳐나왔다.
하염없이 목적지 없이 걸었다.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쏟아졌다.
고향에 잠시 내려와 있던 친구가 떠올라 전화를 걸었다.
“휴지 좀 들고나와 줘.”
친구는 담담하게 휴지를 들고나왔지만,
결국 본인이 울면서 말했다.
“내가 너를 정말 아낀다.”
그 한마디에 살았다.
이 친구는 지금도 나에게 가족 같은 존재이다.
내가 원하던 가족, 내가 원하던 사랑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딸로서, 사랑받고 위로받는 것이
이렇게까지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던 건가
아빠에게도 전화를 걸어 울먹이며 토해냈다.
"아빠도 나 창피해?"
“아빠, 엄마가 나 결혼 파투 났다고 창피하다고 집 나가래."
"아빠도 내가 창피하면 내가 집 나갈게."
창피하다는 말이 아직도 시큰거린다.
아빠는 명확히 “안 창피하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늘 그랬다. 아빠는 나의 아빠이기 전에 엄마의 남편이었다.
나는 무작정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을 싸서, 혼자 길을 나섰다.
늘 집에서 떠나기를 무서워했던
나에게 큰 결심과 충동이었다.
여행의 첫날밤
게스트하우스의 파티에서 자기소개를 하며 해맑게 웃었다.
“첫사랑과 결혼이 파투 났는데, 부모님이 제가 창피하다고 집 나가래서 나왔어요.”
순간 정적이 흘렀지만,
너무 태연하게 말하는 내 모습에 다들 가볍게 넘어가 주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오열했다.
다음날 퉁퉁 부은 얼굴을 본 다른 게스트들은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었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고마웠다.
돌아온 집에서는,
검게 뚫린 마음의 구멍을 채울 길이 없었다.
가족들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 쳇바퀴에는 큰 못들이 박혀 있었다.
달릴수록 찔렸고,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넌 독하다. 그 상황에서도 멀쩡하다니 다행이다.”
나는 독한 걸까.
아니면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 독한 걸까.
속으로 계속 외쳤다.
누군가, 제발 누군가, 이 쳇바퀴를 멈춰 달라고.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