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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낯선 모녀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by 햇빛 윤

나는 PC방 아르바이트생에서 보육교사가 되었다.

서툰 햇병아리 담임 선생님이라

학부모들이 담임을 바꿔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졸업할 때는 학부모와 함께 눈물을 흘리는

보육교사로 성장해 있었다.


집보다 어린이집에 출근하는 게 더 행복했다.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문 앞에서 울던 아이가

나를 의지하며 웃을 때,

내 교실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나는 진심이었다.

부모와 떨어지기 싫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꼭 나와 닮아 보였기 때문이다.


가끔 부모의 온전한 케어를 받지 못한 흔적이

아이들에게 보일 때면,

나는 속상하고 또 화가 났다.


그 화는 누구를 향한 것이었을까.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내가 온전히 책임질 수 있을 때만 아이를 낳겠다.


내가 보육교사를 하면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에 관해 마음속 논의를 하고 있을 때도

우리 집은 여전히 살아남기 위한 전쟁터였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계속 나르시시스트라고 정의했다.


엄마는 나의 모든 것을 따라 했다.

내가 보육교사 일을 2년 차에 접었을 즈음,

엄마도 어린이집에 취직했다.


그때는 이상하다기보다,

'동생 말고 다른 관심사가 생겼구나' 하고 다행스럽게 여겼다.


늘 침대에 누워 있던 엄마였으니까.

심할 때는 관 속에 자신이 누워 있는 게 보인다며

소리치고 울기도 했다.


엄마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내 물건들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외출하면 내 방을 뒤져 옷을 입고,

아빠 앞에서 패션쇼를 하듯 뽐냈다.

돌아오면 장롱은 항상 흐트러져 있었다.


엄마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괴이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지인이 엄마의 모습이 꼭 질투 많은 자매 같다고 말했었다.


딸의 옷이 예뻐 보였다면

함께 사자고 말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엄마는 묻지도 않고,

내가 먼저 묻는 것도 싫어했다.

아빠가 “너네 엄마 패션쇼하더라”라며 농담처럼 말했을 때,

엄마의 눈빛은 아빠 얼굴을 뚫을 듯 차가웠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엄마는 저녁을 하다 말고 칼을 싱크대에 던지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빠와 동생이 없는 날이면 늘 이런 광경이었다.

나는 말없이 저녁을 준비하고, 억지로 먹고, 당연한 듯 설거지까지 했다.


신체의 허기를 채울 수는 있었지만

마음속 허기는 점점 더 커져갔다.


그래서 나는 퇴근하자마자

종종 몸이 안 좋다며 방에 틀어박혀 나가지를 않았다.


누워서 나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을 흘리며

'엄마를 괴이하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해'

'아니야 그래도 내가 딸인데'라며

마음에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엄마의 본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나의 죄책감은 사라졌다.


하루는 엄마가 나를 거실로 불렀다.

역시 아빠가 없는 날이었다.

나는 무서웠다.

엄마의 본 모습이 나오는 순간에는

아빠가 없었으니까.


예상대로였다.

늘 우리 집의 제일 큰 문제는 돈이었다.


내가 보육교사가 되자마자

엄마는 내 허락도 없이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어

내 통장을 만들었다.


월급의 절반은 적금을 들어야 한다고 했고,

내가 엄마에게 주는 생활비도 두 배로 올렸다.


보험료, 휴대폰 요금, 기름값까지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다.


엄마는 돈을 다 내놓으라고 했지만,

나는 몰래 내 방식대로 적금을 들었다.


그리고 결국, 그것이 발각되었다.

그 순간 공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엄마는 돌변했다.


“너 성격 진짜 이상한 거 알아?”

“나가서 살아, 이제.”


엄마는 또 나를 쫓아내려 했다.


이번엔 나도 말했다.


“엄마, 내가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이야.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다 엄마처럼 생각하지 않아.”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을

그 두 마디에 다 담을 수는 없었지만,

처음으로 엄마에게 내 감정을 말했다.


그러나 엄마의 눈빛은 나를 무너뜨렸다.

벌레를 보듯, 죽이고 싶다는 눈빛.

아직도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엄마가 딸에게 그런 눈빛을 보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네 인생에서 내가 걸림돌이라는 소리네?”


엄마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늘 생각해 왔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평범한 모녀처럼 싸우고, 삐지고, 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식탁에 앉아 있던 우리 모습은

모녀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는 나를 두 번이나 죽였다.

엄마가 아빠에게 말했다고 한다.


“딸이 내가 싫다고 나가서 살겠대.”


이 사실을 동생이 전해주었다.

내 편이었을까? 아니면 일부러 상처 주려고 했을까?


그때 나는 확신했다.


내게 가족은, 기댈 존재가 아니라

의심하고 경계해야 할 존재라는 것을.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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