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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가는 동아줄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by 햇빛 윤

“당분간 같이 살아야겠어. 아직 네가 필요해.”


엄마의 그 말과 함께 나는 집에서 쫓겨날 위기를 면했다.


엄마에게 내가 필요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보육교사 일을 이제 막 시작한 엄마는 늘 미숙했고,

서류와 만들기 같은 잡일들을 나에게 부탁했다.


나는 군말 없이 도와줬다.

딸이 엄마를 도와주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당연함’이 아니라,

엄마가 나를 붙잡아 두기 위한 또 하나의 이유였을 뿐이었다.


그 무렵 내 인생에도 동아줄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첫사랑이었다.


남들은 운명의 사람을 만나면 종소리가 들린다는데,

내겐 그런 낭만은 없었다.

나는 그저 그 사람이 내 탈출구가 되리라 믿었다.


집에서 벗어나 독립할 수 있는 길,

가족의 그림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라고.


연애를 다시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 이야기가 오갔다.

부모님도 흡족해했다.

처음이었다.


내 선택에 엄마와 아빠가 흡족해하는 모습을 본 건.

드디어 인정받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동아줄을 붙잡자마자,

나는 그것이 이미 썩어 있다는 걸 느꼈다.


집 근처 주차장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내 차 옆에 험악하게 주차한 차에서 동생이 내렸다.


자차가 없던 동생이 정체불명의 차 앞에서

당당하게 노상방뇨를 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소리를 지르고 따졌을 텐데,

나는 차마 그러지 못했다.


곧 행복해질 나의 미래를 앞에 두고,

차마 이 현실과 부딪힐 용기가 나지 않았다.


데이트에 집중할 수가 없었던 나는 결국

불안감에 차량번호를 조회해 보았다.


대포차였다.


‘미친놈’


내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의 행복한 미래가 눈앞에서 아른거리는데

동생은 또 불구덩이로 나를 끌고 들어가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이건 부모님이 나서야 할 일이야.”

하지만 엄마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빠한테 말하지 마.”


내 입을 막았다.

역시나 이해할 수 없었다.

늘 그랬다.

동생의 사고는 늘 은폐됐고, 돈은 갚아줬다.


엄마의 변명은 늘 똑같았다.

아빠가 고혈압으로 쓰러질까 봐,

동생이 더 망가질까 봐라며 동생을 감쌌다.


아니, 엄마는 사실 자신의 치부를 가린 것뿐이었다.


하지만 진실은 오래 숨길 수 없었다.

집으로 대포차 관련 서류가 날아왔다.


엄마는 아빠에게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했다.


"아들 친구가 차를 샀는데, 들킬까 봐 명의를 빌려줬대."


아빠는 곧장 전화를 걸어 그 친구를 추궁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 친구는 나에게 전화를 했다.


“누나, 누나네 아빠가 전화 오셨는데... 저 뭐라고 해요?

사실대로 말하면 누나 동생 혼나잖아요...”


이 상황에서도 엄마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들의 죄를 아들 친구에게 뒤집어씌운 엄마가

나는 소름이 끼쳤다.


나는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동생 친구야, 괜찮아. 사실대로 말해.”


아빠는 진실을 알게 되자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도 소리쳤다.


“너 왜 알고 있었는데 말 안 했어!!!!”

“엄마가 말하지 말라는데, 그럼 어떻게 해!!!!”


엄마는 안방에 누운 채로 내게 문자를 보냈다.


“너 때문에 부부 사이가 틀어졌어. 내가 침묵한 이유를 네가 깨트렸어.”


나는 또 무너졌다.

왜 모든 잘못이 내 탓이 되는지,

나는 무엇을 잘못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울분이 터졌다.

나는 더 깊이 그 사람에게 기대고 싶었다.

내 그림자의 무게를 함께 버텨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내 큰 오산이었다.


동생은 점점 더 기고만장해졌다.


부모님이 여행을 간 사이, 내 허락도 없이 친구를 집에 데려왔다.

엄마는 오히려 나에게 집안 재산을 지키라며 지시했다.

사진 속에서 즐겁게 웃고 있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나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집에 누워있는 동생과 친구를 흔들어 깨우며 소리쳤다.


“우리 집에서 당장 나가!!!!!”


동생은 나를 미친 사람 보듯 보며 대답했다.

"미쳤어? 왜 그래. 엄마가 자도 된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얘네 당장 안 나가면 내가 집 나갈 거야.”


엄마는 대답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빠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얘네 당장 안 나가면 내가 집 나갈 거야!!!!”


그리고 나는 집을 나왔다.

나는 그 사람에게 도망쳤다.

유일한 보금자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차갑고 잔인했다.

“너랑 결혼하면, 네가 겪는 일들이 내 일이 될 것 같아. 결혼을 미루자.”


나는 결국, 가족 같지 않은 가족이라는 굴레를 택해야 했다.

내가 먼저 그 사람에게 이별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내 동아줄은 그렇게 끊어졌다.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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