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최소 카이스트는 갈 줄 알았던 동생은 결국 집 앞 지방대에 갔다.
대학교에 간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해야 했다.
심리 상담가의 꿈을 잃은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기로 했다.
보육교사도 엄마가 추천한 길이었지만,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독립할 힘을 기르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부모님 집에서 동생과 함께 살게 되면서
내 마음속에는'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첫 월급은 PC방 아르바이트였다.
특별한 직업은 아니었지만, 대학 졸업 이후 처음으로 내 힘으로 번 돈이었다.
그 순간, 나는 삶의 작은 활력을 되찾았다.
화장도 하고, 예쁜 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자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자 곧장 말했다.
“집에 살 거면 생활비를 내.”
나는 자식이 부모에게 용돈을 드릴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드리는 돈은 용돈이 아니라
엄마의 집에서 살아남기 위해 착취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 집의 딸이 아니라 하숙생 같았다.
하숙생인 나는 집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매달 엄마에게 생활비로 바쳐야 했다.
심지어 하루는 자고 있던 나를 깨워
보험 설계사를 만나게 했다.
사인만 하라고 해서 무심코 했더니,
그것은 보험 해지 서류였다.
“왜 해지하냐"라는 보험 설계사의 질문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엄마도 설명하지 않았다.
나중에 동생에게 들었다.
“보험을 그대로 주면 네가 홀라당 쓸까 봐 그랬대.”
그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보통은 결혼할 때나 부모가 자식에게 넘겨주는 것이라는데,
나는 돈을 벌자마자 믿을 수 없는 딸이 되어
보험을 빼앗기듯 해지당한 셈이었다.
엄마는 도대체 나를 뭘로 생각한 걸까.
그리고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전한 동생은 또 뭘까.
나는 엄마가 계속 계모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단 한 푼도 나에게 투자되는 것을 아까워했다는 결론밖에 나지 않았다.
그리고 또 말하지만, 우리 집은 가난하지 않았다.
나는 엄카도 없이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충당했지만,
대학생인 동생은 아르바이트 한 번 하지 않고도
늘 유치원생처럼 보호받았다.
심지어 동생 문제는 늘 나에게 떨어졌다.
낮이건, 밤이건, 새벽이건 연락이 왔다.
“누나, 동생이 옆 테이블이랑 싸워요.”
“누나, 동생이 돈 빌려 가고 연락이 안 돼요.”
“누나, 동생 지금 데리러 와야 할 것 같아요.”
나는 아무렇지 않게 달려갔다.
아니, 아무렇지 않게 달려가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왜 그랬을까
왜 부모님이 할 일을 내가 아무렇지 않게 했을까
아무렇지 않았던게 맞을까
시내 한복판에서,
동생과 시비가 붙은 나보다 덩치가 세배나 큰
건장한 남자를 이겨보겠다고
나는 사람들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
결국엔 늘 같은 말로 마무리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누나인데요.”
몇 번이나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소리 지르고 사과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언제나 돈이었다.
동생은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고 잠적하길 반복했다.
가족들이 모르는 사건도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집안의 반응은 늘 같았다.
다들 회피 했다.
아빠는 자기 자신에게 화를 냈다.
거실 공기가 싸늘해져 나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엄마는 아팠다.
그저 침대에 누워, 누군가 해결해 주기를 기다렸다.
동생은 태연했다.
어차피 부모님이 해결해 줄 거라 믿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늘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숨 막히는 공기 속에서 숨쉬기가 너무 힘들어
빨리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나는 여전히,
이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