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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장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by 햇빛 윤

시작하기 전에

당신에게, 그리고 나에게


글을 써 내려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이 혹시 답답하거나 너무 우울해하지는 않을까 하고.

공감과 위로 대신, 오히려 무거운 감정만 안겨주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하지만 내 이야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사건들이 더 많았고,

나는 그 이야기들을 끝까지 풀어낼 것이다.


중요한 건, 지금의 내가

그 암울했던 이야기들을 이렇게 적어낼 만큼

마음이 단단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가족들을 걱정하고, 사랑한다.

다만, 이제는 나 자신을 포기하면서까지 사랑하지는 않는다.

나는 지금, 예전보다 더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대학교 졸업 시즌이 되었다.

강제로 들어온 학교였지만, 나는 나름 새로운 미래의 방향을 찾고 있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 차마 말하지 못해 늪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한 줄기 동아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면서 접한 심리학 강의들은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나는 복지보다도 사람의 심리를 깊이 알고 싶었다.

심리를 알면 가족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심리상담사가 되고 싶었고,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꿈을 실현하지 못했다.

말조차 꺼내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동생이 학교 기숙사에서 쫓겨났기 때문이었다.

당시 공부 잘한다는 아이들이 모인 그 학교에서

이런 일은 최초였다고 한다.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왔다.


“어떻게 해야 하니, 어떻게 해야 하니…”


울먹이며 되풀이되는 같은 이야기뿐이었다.

사실 엄마는 충분히 동생을 케어하며 통학 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판단을 하지 못했다.

그저, 엄마의 울먹임에 해결책을 주고 싶었다.


나는 결국 말하고 말았다.


“엄마, 내가 동생 있는 지역에 취직할게.”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화색이 돌며 “알겠다”라고 답했다.

마치 처음부터 내 입에서 이 말을 끌어내려고 했다는 듯,

곧바로 동생과 내가 살 집을 계약해버렸다.


그 순간, 내 대학원 꿈은 날아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빠는 이 일에 미안했는지,

심리상담사 자격증 과정의 현수막이나 팸플릿을 볼 때마다

내게 보여주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잃어버린 꿈이었다.


나는 이제 취직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동기들은 부모님이 사주신 첫 정장을 입고,

서로를 보며 어색하게 웃고 설렜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서럽게 울었다.


엄마에게 정장을 사달라고 했다.

동생 문제로 세상을 떠나보낼 것처럼 울던 엄마는

정작 내 취업 준비에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단정하게 입고 가면 되지 않니?”


그때부터였다.

내 안에서 “엄마가 계모 같다"라는 생각이 싹튼 것은.

친구에게 사정을 말하고 정장을 빌렸다.

깡마른 내가 보통 사이즈의 정장을 입으니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고,

나는 또 눈물이 났다.


결국 울며불며 다시 엄마에게 요구하자,

엄마는 정장을 사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꿈을 위한 설레는 정장이 아니라,

겨우 생존을 위한 갑옷 아이템 같았다.




정장을 입고 면접장에 갔지만 몇 번이고 떨어졌다.

세상의 벽을 느끼던 그때,

엄마는 위로나 격려는커녕

“어디든 빨리 취직이나 해라”라는 말뿐이었다.


엄마가 정한 한 직장 면접 날,

내 안에서 울고 있던 내가 드디어 폭발했다.

화장대 앞에서 밥을 먹고 가라는 엄마의 말에

봇물이 터지듯 소리를 질렀다.


거실에 앉아 있던 동생을 향해 삿대질하며 말했다.


“내가 너 때문에 이렇게 됐어!”


두서없는 외침이었지만, 그 말 안에

내 모든 억눌린 마음이 담겨 있었다.


아빠는 나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엄마는 오히려 내 방문을 닫고

소매를 걷어붙이며 싸울 기세로 몰아붙였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싸움은 엄마와 나의 싸움이 아니었다.

엄마의 치부였던 아들을 건드렸기에,

엄마는 더 날카로워진 것이다.


나는 방문을 거세게 열고,

지갑과 핸드폰만 챙겨 집에서 5시간 거리로

무작정 집을 나갔다.

다시 돌아갈 걸 알면서도,

그 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엄마를 이해시킬 수 없었다.

아니, 엄마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나르시시스트라는 생각이

그때부터 내 안에 뿌리내렸다.


친구와 함께 5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다른 친구 집으로 향했다.

친구가 “넌 정말 독하다"라고 할 만큼,

나는 내내 한 자세로 움직이지 않았다.


몸은 집을 도망 나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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