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
일주일 동안 엄마의 문자에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 메시지에는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하나도 없었다.
겉으로는 미안한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것이 순간의 위기 모면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결국 집에 돌아가야 했기에
엄마의 연락을 받았다.
내가 집에서 5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있다는 걸 알고
엄마는 놀란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걱정의 기척이 아니라,
“이 일이 그 정도였나?” 하는 어이없음의 기척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돌아가지 않을까 봐
애써 목소리를 눌러 담는 것이 느껴졌다.
일주일의 일탈은
지금은 친구와 가끔 웃으며 떠올리는 추억이 되었지만
그때의 나는 즐겁지 않았다.
낭떠러지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바다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수영을 배운 적이 없었고,
육지로 돌아가기엔 곧 물거품이 될 인어공주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인어공주처럼
알면서도 다시 육지로 돌아갔다.
동생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내 요리 실력은 이때 늘었다.
매일같이 동생을 위해 밥을 차려야 했기 때문이다.
지원받는 식비는 20만 원뿐이었다.
동생은 따로 용돈도 받았지만,
나는 성인이라서 용돈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서른이 된 지금도 동생은 여전히 용돈을 받는다.
엄마는 핸드폰으로 나를 조종했다.
“동생 일어났어?”
“학교 몇 시에 갔어?”
“밥은 먹였어?”
“몇 시에 들어왔어?”
숨이 막혔다.
내 삶은 온통 동생의 스케줄 관리로 채워졌다.
친구가 간만에 와서 밥을 사주겠다고 해도
내가 답장이 늦으면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동생 문제집 사야 돼. 당장 집에 들어가.”
동생은 술과 담배를 다 하는 건장한 고3이었는데
엄마 눈에는 여전히 손발 없는 아이였다.
나는 제대로 친구를 만날 수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친구가 직접 찾아올 때에야 겨우 볼 수 있었다.
어느 날은, 동생이 야간자율학습을 간 틈에
친구와 근처 대학 축제에 갔다.
설레면서도, 언제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질지 불안했다.
그런데 먼저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좆 됐다.”
그 한마디와 함께 전화는 끊겼다.
부모님이 갑자기 들이닥쳤다는 것이다.
거실에 담배를 던져놓고 나온 동생,
그리고 축제에 간 나
누구보다 내가 더 혼날 차례라는 직감이 들었다.
집에 돌아가니, 동생은 부모님과 태연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여유로운 표정이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봐, 나한테는 아무 말 안 하지?'
라고 말하는 듯한
그 표정이 너무 얄미웠다.
이상할 정도로, 그날 저녁은 평화로웠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해일이 오기 전, 바닷물이 빠져나간 고요라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동생은 대담해졌다.
엄마가 우리 집에 와 있을 때,
보란 듯이 술을 마시고 화장실에 토해 세면대를 막아버리기도 했고,
옆방 창문에 기대 담배를 피우다 걸리기도 했다.
엄마는 동생을 혼내지 않았다.
그리고 내 직감은 맞았다.
동생은 같은 반 친구들의 돈을 훔쳤고,
몰래 설치된 핸드폰 카메라에 찍혔다.
충격이었다.
가난하지도 않은 집,
동생은 이미 충분히 부유하게 대접받고 있었는데.
나에게만 가난한 부모였고
동생에게는 부유한 부모였는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돈을 갚고 사과한 뒤, 교내 봉사 징계로 끝났지만
동생에게 5년 동안 범죄 이력이 남았다.
그리고 부모님의 마음에도 금이 갔다.
나는 우리 가족들이 너무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엄마는 나를 향해 말했다.
“내가 데리고 있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결국 또 내 탓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10kg이 빠졌다.
씻다 거울을 보며,
갈비뼈가 도드라진 내 몸을 보고 눈물이 났다.
동생을 학교에 보내놓고
빈속에 술을 마시고, 자다 깨다 울기를 반복했다.
하루는 엄마가 찾아와 함께 밥을 먹을 때
엄마가 나를 걱정해서 찾아왔나 보다 생각이 들어
“나는 지금 이렇게 같이 밥 먹는 게 제일 좋아”라고 말했다.
그 말은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하지만 그다음 엄마의 말은
“너 정신병자 같아.”
그때 나는 깊이 깨달았다.
내가 정말 엄마의 친딸이 맞는 걸까.
엄마는 나를 3.8kg 자연분만으로 낳았다며
늘 자랑하곤 했는데,
나는 엄마에게 어느새 동생을
비행의 길로 인도한 정신병자가 되었다.
친척들에게는, 나는
“대학교를 멀쩡히 졸업하고도 취직도 안 하고
부모님 등골 빼먹는 못된 딸”이 되어 있었다.
몸은 아팠지만 병원 검사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분명 우울증이었을 것이다.
큰 창문을 보며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대학교 때도 죽고 싶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을까.
나약했던 걸까, 아니면
이런 상황을 만든 사람들이 더 잘못이었을까.
나는 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 영혼 10kg을 갉아먹으며
동생의 보모이자 엄마의 꼭두각시 노릇을 계속했다.
그리고 마음속 깊이 다짐했다.
이 가족 같지 않은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나는 돈이 필요했다.
<사랑받기 위해서였던 나날>, 昀[햇빛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