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루왁커피는 커피를 잘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비싼 커피 중 하나를 대답해보라고 하면 바로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꽤 유명한 커피라고 말할 수 있다. 루왁 커피는 인도네시아어로 ’커피’를 뜻하는 ’ 코피‘와 ’ 긴 꼬리 사향고양이’을 의미하는 ’ 루왁(luwak)’이 합쳐져 불리게 되었다.
이런 루왁 커피는 사향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고 배설한 배설물에서 커피콩만을 잘 골라낸 뒤 세척하여
커피라는 것까지는 아마 다들 잘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잘 세척한다고 하여도
위생과는 거리가 멀어 실체를 알고 나면 마시고 싶다는 마음은 생각보다 들지 않을뿐더러
평범하게 커피를 마실 방법을 제쳐두고 도대체 언제부터 어떠한 이유로
루왁 커피를 마시게 된 것이냐는 의문이 저절로 생긴다.
이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도네시아 커피의 간략한 역사와 함께 약 300여 년 전
네덜란드령 동인도 회사가 존재하던 시절, 그중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던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가 존재한 시절로 돌아가 봐야 한다.
(참고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1602년부터 존재했으며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는 1800년부터 1949년까지 존재했다. )
인도네시아의 커피 역사는 1696년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예멘으로부터 아라비카종이 유입되는 것을 시작으로 이후 자카르타(Jakarta), 수카부미(Sukabumi), 보고르(Bogor) 지역에서도 커피 열매가 재배되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바(Java), 수마트라(Sumatra), 술라웨시(Sulawesi) 등으로
커피 농경 지역을 넓혀가며, 인도네시아는 완전한 커피 수출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네덜란드는 1800년 인도네시아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두게 되며,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의
식민지 지배를 받던 30년째 되던 해인 1830년 루왁 커피의 탄생에 서막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한 끔찍한 시스템이 인도네시아에 도래하게 된다.
해당 시스템은 ‘Cultuurstelsel’라는 ‘단일 경작 정책’ 시스템으로
네덜란드가 전쟁으로 인해 국고에 재정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보아 그 손실을 메꾸기 위해 도입된 시스템이다.
‘Cultuurstelsel’라는 이 시스템은 1830~1870까지 시행된 정책으로, 토지세 대신 인도네시아 마을
토지의 20%를 수출을 위해 네덜란드의 정부 작물 담배, 사탕수수, 후추 등을 심거나
인도네시아 농민들은 1년 중 60일 동안 네덜란드 정부 소유의 농장에서 강제로 일해야 했다.
하지만 이는 이론일 뿐 현실은 인도네시아의 농민들이 기존에 재배하던 작물들은 거의 모두
네덜란드의 작물들로 대체되었을 뿐만 아니라 60일 이상으로 네덜란드 정부 소유의 농장에서
강제로 노동을 착취당했다.
이 같은 시스템의 불합리성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네덜란드의 후추, 사탕수수, 담배, 커피 등의
수출 작물은 농민들 개인의 목적으로 수확이 금기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농민들은 노동의 산물
또한 누릴 수 없었다. 인도네시아 농민들에게 닥친 이러한 상황은 말이 좋아 노동자로 포장되었던 것이지
사실 그들은 자유를 빼앗긴 노예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으니 그들이 느꼈던 서러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중 인도네시아 농민들에게 유독 더 서러움을 안겨주었던 것은 바로 커피를 자유롭게 즐기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커피를 비교적 자유롭게 즐길 수 있던 인도네시아의 농민들이지만 'Cultuurstelsel'라는 시스템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인도네시아의 농부들은 그저 네덜란드의
농장주들이 커피를 여유롭게 즐기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농민들은 커피에 대해 갈망하며 어떻게 커피를 마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커피콩의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나름 희망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에게 동물의 배설물 속에서 발견된 커피콩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커피의 맛을 흉내 낼 수만 있다면 배설물쯤이야 씻어내면 그만이기에
커피를 마시는 데 있어 커피콩에 묻은 배설물은 큰 걸림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커피가 마시고 싶어도 똥 커피를 마시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지만
커피 한잔의 자유조차 뺏기며, 강제로 노동을 착취당하는 농부들에게 커피 한잔은 무척 간절했을 것이다.
그렇게 농민들은 사향고양이의 배설물 속에서 하나둘씩 커피콩을 모아 그토록 염원하던
커피를 내려 마시게 되며 우리가 아는 루왁 커피가 탄생하게 된다.
그렇게 루왁 커피가 탄생한 이후 루왁 커피는 우연한 계기로 인해 유럽으로 퍼져 나아가며
사향고양이 똥으로 만든 커피라는 독특함과 특유의 맛은 유럽 사람들의 관심과 입맛을 한 번에 사로잡아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루왁 커피가 어떻게 유럽으로 유입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 농부들이 코피 루왁을 마시는 것이 네덜란드 군주의 눈에 띈 것이 계기가 돼서 ‘,
’ 농부들끼리 입소문을 타다 네덜란드 농장주들에게 알려지면서 입소문을 타서 ‘등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기에 콕 집어 말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떠한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결과적으로는 코피 루왁이 유럽에 유입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루왁 커피가 거래된 가격에 대해서는 정확히 얼마에 거래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의 가격보다 꽤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만 하더라도 루왁 커피는
지금과 다르게 오롯이 야생 사향고양이의 배설물 속에서 찾은 커피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격이 높게 책정되어 거래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루왁 커피의 가격은 뒤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이후 코피 루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피 마니아들만 아는 커피로 서서히 잊혀갔다.
차라리 그대로 쭉 잊혔다면 아마 지금과 같은 사향고양이의 학대 문제는
일어나지 않아 좋았겠지만 고양이 똥으로 만든 커피라는 사실은 인간의 호기심과 불러일으켜,
상업적으로 이용하기에 아주 좋은 소재였다.
루왁 커피가 다시금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시기는 300여 년이 지난 20세기 후반으로,
여러 주요한 사건들을 거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