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전자담배가게 강아지가 예쁘다네

by 내담자 Jay


이사 온 곳은 조금 불균형했다.

기본적으로 오래된 동네인데, 그러다 반대편만 재개발이 되었는지

신호등을 건너면 올리브영에 스타벅스에 없는 것 없이 뻑적지근 하지만

내가 사는 이 편은 다들 겨우 생긴 오래된 빌딩에 올망졸망한 가게들이 늘어져있었다.

희한했다. 그리고 그 터줏대감 스트릿에 담배가게가 하나 있었다.


전자담배가게였다. 나는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독립된 점포를 내도 될 만큼 전자담배라는 게 수요가 있는 건가 궁금하기도 하고

장사는 잘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일단 내고 본 건지 뭐 이런저런 생각이 들다

어느 날 그 앞을 지나가는데 간장 치킨이 서있었다.

잉? 말티푸였다.


나는 대부분 대형견이 아니고서는 머즐(눈 아래부터 코와 입을 포함한 주둥이)이

짧을수록 사랑하는데 말티푸는 딱 그러했다.

한참을 일부로 그 앞을 지나다니며 눈도장 찍다가 어느 날은 강아지가

문에 코를 박고 있길래 이때다 싶어서 문을 열었다.

“저… 강아지 한 번 만져봐도 되나요.”라고 말을 건넸다.

사장님은 “아 네 그러세요” 하고 흔쾌히 허락해 주었고

나는 문고리를 붙잡은 채로 서너 번 만져주고 “안녕히 계세요” 하고 돌아섰다.

그러다 “강아지 혹시 간식 가리는 거 없나요?”라고 물으며

너무 귀여워서 간식 좀 주고 싶어서요라고 말했다.

사장님은 "딱딱한 것만 아니면 괜찮아요" 그랬다.


나는 집에 강아지가 있는 척, 댁의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 남는 간식이 있어서 그냥 갖다

주는 척하곤 강아지 간식 무인 가게로 곧장 달려가 간식을 사 왔다.

집에 갔다 온 척 다시 가게로 들어가 신난 강아지를 마주 보고는 한쪽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강아지에게 기다려 훈련을 시키며 놀았다. 이제부터 그 강아지 이름은 리치(가명)라고 하자.


그렇게 나는 그날 이후로 물꼬를 터서는 시간을 안배해서

견주가 부담스럽지 않은 것을 목표로 뜨문뜨문 리치를 보러 갔다.

너무 자주다 싶으면 일부로 그 앞은 지나가지도 않는 의식적 활동도 해야 했다.

모르겠다 주인 입장에서는 ‘잊을만하면 또 오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최대한 거절 옵션이라곤 없는 자영업자의 편에서 생각하려 애썼다.


어떤 날, 늘 가는 헬스장 문이 닫혀있었다. 나는 그럴 때 괜히 헬스장 유리문을

두드리며 왜!!!!! 라며 가벼운 퍼포먼스를 하고 돌아서는데 그게 진심이라기보다는

재밌기 때문이다. 이미 헬스장 가려고 마음먹고 온 것이기 때문에

나는 운동한 것으로 쳐서 딱히 아쉽지도 않은데 그러는 거다.


여기까지 걸어왔으니, 해(태양)도 봤으니 된 거다 하다가 돌아가려는데

문득 예전에 리치와 놀 때 강아지 산책이슈가 나온 적이 있었던 게 생각났다.

의외로 많은 손님들이 산책을 대신시켜주시기도 한다는 이야기.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쿵쿵 뛰다 용기 내서 “저.. 혹시 리치 산책시켜도 되나요?”

라며 아무렇지 않은 척 물어보았다가 “이제 곧 마감시간이라서..”라고 거절당한 일이.


그게 생각이 났다. 지금은 해가 쨍쨍한 오후 한 중간. 지금이라면..?

나는 문을 두드렸다.

“사장님… 리치 산책 시켜도 되나요?”

사장님 입장에선 매출과도 상관이 없고 신분도 불투명한 자가 두 번째로 프러포즈를 한다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텐데 흔쾌히 다녀오시라고 했다.

단, 내 물통을 보며 “음 번거로우니까 그건 놓고 가세요.” 그랬다.

나는 그렇게 내 전화번호와 묻지도 않은 이름까지 주고 리치와 산책을 나섰다.


리치는 문을 나서자마자 줄을 끌었다. 그러나 리치는 남의 집 강아지.

흥분해서 줄을 끌며 컨트롤이 안되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산책의 기본. ‘줄은 팽팽해지지 않기’를 원칙으로 한 산책,

그렇게 나의 지옥의 인터벌 유산소가 시작되었다.


리치가 줄을 당기면 멈췄고 다시 줄이 느슨해지면 앞으로 나아가며 흥분도 조절과

산책 시 개매너 답채를 목표로 하다 보니 리치는 뒤통수로 언짢음을 드러냈다.

생각해 보면 첫 술에 유대감 적은 인간이 하려는 게 무리였을 수도 있지만

뭐, 어찌 되었던 나 또한 나대로 불협화음에 불평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으며

뒷산을 갔다 하산해 다시 가게로 향했다.


때마침 사장님은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가게를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계셨다. 약간 죄송했다. 사실 많이.

산책 종료. 그리고는 나는 털썩 앉아서 헉헉거리며

“웨이트 보다 이게 더 힘들어요. 다시는 못할 것 같아요”라고 했고.


사장님은 무사히 돌아온 강아지와 다행히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닌 걸로 판명 난 것이

반가운지 사뭇 업된 목소리 톤으로 전과 다르게 이런저런 말을 거셨는데

정작 나는 대꾸할 힘도 없을 만큼 지쳐버렸다.

그러다 별안간 “이제 리치는 저 안 좋아할 거예요.. 제가 리치가 줄 당길 때마다 멈췄거든요

이랬다.” 사장님은 웃으셨다. 리치도 웃고 있었다.(저게 웃는 모양이라고 사장님이 알려줌)

그러더니 “근데요… 한번 산책해 주면요 이제 계속해줘야 해요”라고 갑자기 묵직한

소리를 하셨다.

“저번에 옆집 사장님이 한번 산책시켜 주셨는데 이제 그 사장님 올 때마다 산책

시켜 달라고 난리가 나요.”

“그럼 좋은 거 아닌가요?”

“아니 근데 담배만 사러 오고 싶으실 때도 있으실 테니까요...”

이렇게 난 바보다.



세상이 변해서 이제는 담배가게는 없다.

그래서 친구가 [담뱃가게 아가씨] 가사 서사 같은 이야기를 겪었다고

나한테 들려주면 나는 잠깐만 있어봐 내가 아는 변호사실 사무실이…

아니다 여기가 더… 하며 핸드폰을 뒤적거렸을 것이다.

그렇게 담배만 파는 담배가게는 없고, 그 아가씨가 놀랄 적에 눈싸움 한 판을

벌릴 와다다다아다다다다다다다!!! 도 이젠 어림없지만

전자담배가게가 생기고 그 가게 강아지가 너무 예뻐서 빙빙 주위를 도는 이야기

는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장필순의 노래처럼 내 외로움이 그 역학을 부른 것 같다.

그래서 어느새 나는 그렇게 좋아하는 강아지보다도 그냥 그 가게 의자에 앉아서

사장님과 몇 마디 섞는 걸 더 소중한 쪽에 두었던 것 같다.

아무 이야기라도 좋으니 이렇게 잠깐 공기 좀 섞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내 자욱한 연기 속에서 실제로 보이는 사람과 말소리가 필요했었다.


그때 내게 그 아무것도 같은 대화는 내가 사가던 커피 한잔보다 더 무거웠다는 것을 사장님은

아실랑가.

지금은 자주 가지 못해 어쩌다 갈 때마다 리치도 반가워해 주고 사장님도 반가워 아는 체

하며 대화는 유려하고 공기는 산뜻하지만 그때의 뚝뚝 끊기던 대화, 어색한 공기, 내게 달려들지 않는

강아지의 털 몇 가닥만으로 내가 한 철 났다는 것을 사장님은

아실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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