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빨래를 널 적에 젖은 빨래에 온기가 남아있으면 깜짝 놀라곤 했다.
통각이 예민해서 뜨뜬 미지근한 빨래에도 반응하는 것. 이 아니라
보일러 팽팽 돌려가며 엄청난 양의 뜨거운 물을 사용했다는 것에 놀라는 것이다.
피부가 아닌 금전에 대한 통각이 발달한 탓이겠다.
그리곤 빨래를 누가 뜨거운 물에 하느냐며 늘 한마디 했고
뜨끈해야 때도 잘 빠지는 거 아닌가! 하며 나를 반항하게 했다.
독립을 한 곳에 빌트인 된 세탁기는 본가 세탁기에 비하면 정말 작고
체신머리 없는 알림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너무 조잡스러워서 빨래가 끝나고 하면 뛰어가서 빨리 널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날도 헐레벌떡 세탁기 문을 열고 젖은 옷을 집는데 깜짝 놀랐다. 뜨거운 것이었다.
내가 냉수로 설정을 안 바꿨나? 보일러는 왜 켜놨지? 샤워할 때 빼고 분명 꺼놨을 텐데
뭐지? 하며 그 순간에 물음표가 다다닥 붙었다.
추운 날, 18도가 된 집을 가스비 없이 만회해 보겠다고
전기장판도 써보고 난방텐트도 치며 버텨가던 적이 있었다.
결국엔 실패로 돌아갔는데 이유는 코가 시려서.
예전에 (구) 고시원이었던 원룸 친구네 집에서 잔 적이 있는데
바닥은 절절 끓는데 이상하게 한기가 가라앉질 않아 거리에 있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이유를 찾다 아마 벽이 단열벽지는커녕 그저 쌩 콘크리트 벽이라
거기서 이 난리가 나는 건가 하며 결론을 내렸던 기억. 여전히 미스터리지만
등이 이렇게 뜨거워도 코가 시리면 인간은 잘 수가 없구나
까다롭다. 그리고 추우면 코가 시리는구나 하고 신기했다.
그래서 그 작은 부위의 항의로 고작 20도로 맞춰놓고 살다
손바닥 만한 집에 전기료가 발바닥만큼 나온 사연.
야 임마 내 손이 이렇게 작은데 이렇게 보트만 한 발바닥이 어디에 있냐 이놈아
나는 그날 이후로 보일러 값이 무서웠다. 돈이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어느새 엄마처럼 마치 뜨거운 빨래에 물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앗-! 하며 외마디를 소리를 내게 되었다.
다행히 내 옆에는 빨래는 뜨거운 물이지-하는 딸은 없었다.
또 어떤 날 변기청소를 하고 있을 때.
물 내려오는 가속도를 이용해 휘리릭 수세미를 돌리면 더 때가 잘 빠질 것이기에
물을 내리며 수세미를 놀리는데 그게 그대로 “안녕히 계세요!” 하며 빨려 들어갔다.
….
나는 다급한 마음에 파바박 변기 구멍을 구멍 나게 팠다.
잔상조차 남기지 않고 빨려 들어가 버린 수세미
나는 내가 뭘 파고 있다는 것에 자각도 없이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
수세미는 그 '가속도'를 타고 이미 딸려가고 없다.
‘안되는데.. 아 안되는데 수리기사 부를 돈 없는데..’
나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덩그러니 앉아있던 것조차 자각 없이 일어난 일.
모르겠을 때 나는 눈치를 봤다.
그래서 나는 변기 눈치를 봤다.
하루 동안은 사용하지 않았다. 최대한 더 자극하지 않으려
하여간 하루 동안은 소변만 보았다…
앉을 때도 눈치를 보았다. 괜찮나… 하며
엄마는 나를 위로하는 법이 없다.
그냥 그러기로 내가 태어나기 전에 정해진건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 정도로 아주 가벼운 위로도 위안도 못하는 사람인데
나의 이런 추잡한 일화를 듣더니
지나가듯
‘엄마 결혼하고 돈 무서워하던 모습 보는 것 같네...’하고
속삭이듯 말했다.
작은 말이 더 크게 들리는 법.
나는 어느새 '얼마가 들지'가 먼저인 엄마의 모습을 닮아있었다
독립이란 게 도대체 뭔지.
나는 예전에는 까르르르 깔깔거리며 아따맘마를 본 사람이다.
(아따맘마에 딱히 그런 웃음폭탄 같은 요소는 없다는 게 사실이지만)
그런데 이제는 아리가 반찬 투정을 하거나 동동이가 성장기를 들먹이며
고단백음식을 요구하면 어느새 내가 한애숙(아따맘마의 엄마이름)이 되어
저저저저 하며 손을 부르르 떤다.
맨날 밥 차리는 게 쉬운 줄 아니!!!! 도대체가!!!
그런다..
돈 벌어오는, 언젠가부터 손하나 까딱 안 한다고 한국독자의 욕을 옴방지게 먹고
있는 아리 아빠는 또 어떤가
아침 밥상머리에서 애들이 툭닥거려도, 애 엄마 머리가 부처님이 돼있어도,
빵 절반이 새까맣게 타버린 토스트를 줘도
말없이 밥 먹고 가방 들고 회사 가는 아리 아빠 모습을 보면 나는 조용해진다.
어느새 내가 이렇게 분화된 것일까.
아따맘마 따위, 사실은 독립된 한 인간을 분열시켜 만든 애니메이션이 아닐까.
한 사람 안에 다 동동이 같은 성욕에 휘말리는 시기도 있고(한국어 더빙으로 많이 순화됐지만)
아리처럼 한 사람만 짝사랑하는 바보 같은 면도 있고
저녁으로 어묵만 내놓고 싶은 엄마도 있고 돈 벌어와야 하는 아빠도 있다.
너무 많이 자라 버렸다.
아리만 눈에 보일 때 그만(?)했어야 하는 건데
4명한테 다 공감되는데 왜 뿌듯한 대신에 입안이 씁쓸 거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