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의 척도, The Office

by 내담자 Jay


엄마는 내가 회사를 막 들어갔을 때 내게 유튜브 링크하나를 보내주며

시간 날 때마다 보라고 했다.

아마도 재테크에 관한 이야기로 “무슨무슨 아빠가 들려주는 어쩌구 저쩌구”였다.

채널명이었는지 영상 제목이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사회초년생들이

알아야 하는 돈에 대한 어떤 것들이 담긴 동영상이었다.

그거 말고도 2-3개 더 보내길래 나는 말했다.

“엄마, 내가 남의 아빠까지 알아야 돼?” 엄마는 그렇다고 했다.

아빠라는 타이틀로 친근감과 허물을 녹여보려는 작전은 부모에게 감정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거추장스러운 조사일 뿐.

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결은 좀 다르지만 우리는 또 어느 분야의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을

대가, 시효라 부르고 더 나아가 그 분야의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른다.


오랜 상담과 대중심리서적을 읽으며 보낸 나날들,

뿌리는 ‘애착’과 깊게 관련 있다는 진단이 내려진 나는

이제 그 키워드를 중심으로 자료를 찾기 시작했고

그렇게 애착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볼비(John Bowlby,1907~1990)까지 갔다 오게 됐다.

정갈하던 도서관에서 존 볼비의 책을 처음 펼쳤을 때의 그 복잡했던 마음이란.

전문 서적까지 가야 하는 건가. 젠장할 교양서에 그칠 순 없는 거였나라는 생각으로 복잡했던 기분.


애착은 불안정 애착, 안정 애착, 혼란 애착 등으로 분류되는데

요지는 안정 애착이 아니면 미안하지만 후에 계속 문제가 될 거고

그런 패턴으로 관계를 맺는 방식이 고정될 것이라는 그런 건

나도 알고 지금 보는 건데 여전히 할 말은 그것뿐인가?

해결방법은 안 알려주고 진단명만 던지면 어쩌자고 하며 부르르 떨던 기억.


그런데 그런 것들, 잊어도 좋다.

이제부턴 내가 익힌 나만의 기준을 소개하겠다.

이것은 내가 어떤 타입의 애착인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닌,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지 아닌지를 알려주는 지표 역할을 해 줄 것이다.

너무나 실용적이지 않은가? 심지어 엄청 재밌다!

전문서적 들여다보며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냥 그 사실만으로 괜히 마음이 답답해질

필요도 없는 그런.


바로《오피스》(The Office 2005~2013)를 보면 된다.

미국 TV시리즈, 장르 모큐멘터리, 직장, 코미디, 시트콤.

수많은 밈과 패러디로 한 번은 지나쳤을 그것.

그만큼 탄탄한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고

한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해 에피소드 초장부터 나오는

머그 컵은 아마 한 번은 검색해 보게 될 것이고

등장인물이 새겨진 티셔츠는 어디서 파는지,

저 책상 위에 피규어는 얼마면 되는지, 주변에 본 사람이 있으면

흥분해서 할 얘기 쏟아질 그런 드라마.

이것만 보면 된다.


그리고 시즌 9(마지막 시즌)까지 다 봤다?

그러면 당신은 굳이 전문가를 찾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 시즌 8에서 더는 못 보겠다? 그렇다면 약간은 문제가 있다.

(스포주의) 바로 주요 인물이 하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참을 이거 진짜 웃기다고 깍깍거리고 봤다가

문득 시즌이 몇까지 있는지 확인하고 시즌 2부터 우울한 기분이

들어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우울감에 점점 집중이 흐트러진다면

나처럼 전문가가 필요할지 모른다.


그리고 시즌2부터 슬픈 사람은 당연히 시즌 8 이후는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안경이 얼룩질 정도로 울어버린다.

이렇게 쓰는 것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예전에 어떤 책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박완서 선생님이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읽을 적에,

어느 편에선가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죽고 나자

그 이후 편부터는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상실감에 더는 나아갈 수가 없으셨다고 한다.

도무지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고..


미국 코미디 시리즈를 끝내 다 보지 못한 것을

박경리 선생님이『토지』를 보다 만 에피소드와 비교한다는 게

호사스러울 수 있다만 골자는

나에게 상실감이 불러오는 것이 언제나 애착이었고

그것이 언제나 이렇게 번번이 문제를 일으켰다.

심지어 이런 가상세계에서 조차도.


정신과 주치의 말을 빌리면 현대인들 중 애착장애

안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고 한다.

이 끔찍한 게 다른 흔하다니.

관계 맺는 게 곤란해져 버리면

땅이 아니라 늪에 산다고 보는 게 편하다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먼지에도 짓눌려 넘어지게 된다

애초에 땅이 아니니까. 자연히 우울증 고위험군이 될 것이고.


코로나 거리 두기로 연결이 다 끊어진 사람들이 우울감을 호소해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생겼을 때도

나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와서 도무지 평소와 다름을 느낄 수가 없었고

그때 뭔가 심각함을 느꼈다.

코로나블루조차 걸리지 않은 게 내 인생의 블루.


평생을 사람을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과

전부 한데 넣고 치워버리고 싶은 마음

그 밀물과 썰물을 끝없이 반복하는 인생은

뭘 안 해도 녹초가 된다.

이미 그 줄다리기에 에너지를 다 써버렸으니까.



그래도 ‘내가 애착에 문제가 있구나’라는 자각은 정말 큰 한걸음이 된다.

지금 오피스 시즌2에서 흔들릴 다른 나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적어도 무작정 공부하기보다는 키워드를 찾아 공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오피스는 오피스대로 즐기시길.. 좀 빻은 부분이 많이 나오긴 하는데

웃기다 진짜로.. 애착 테스트도 되고 얼마나 좋은가..

시트콤의 공식이었던 방청객 웃음소리를 처음으로 도입하지 않은 드라마라고도 한다.

그리고 원작은 마이클스콧, 드와이트가 나오는 미국버전이 아니라 영국이라고 하고..

어쩌면 다큐멘터리식 코미디 (모큐멘터리)의 어머니일지도 모른다.

사실 영드고 미드고 문외한이지만 다큐멘터리식 코미디의 이모는 될지 모른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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