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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진 Jun 25. 2024

넷이산방

김환기, 집 (미술에세이로 쓰는 나의 이야기)


김환기와 김향안의 신혼집, 수향산방 

    

김환기와 김향안이 1944년부터 1948년까지 머물렀던 신혼집 이름은 수향산방이다.

그들은 훗날 긴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이 성북동 수향산방을 그리워했다. 얼마나 풋풋한 신혼생활이었을까?

그들을 둘러싼 지붕, 구름 창문, 나무와 화분, 달항아리들이 그들의 마음이 담겨 듬뿍 정겹다.

둘만의 공간에서 다정다감하게 꼭 붙어있는 부부의 실루엣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수화 김환기의 수, 김향안의 향이 만나 수향산방이 되었다. 유치하지 않고 사뭇 진지하고 행복이 담긴 이름이다.      


우리의 신혼집, 마인빌 오피스텔      


우리는 빌트인 오피스텔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보수적인 아버지는 오피스텔이 무슨 집이냐며 볼멘소리를 하셨고, 그곳에서 사는 것에 대해 탐탁지 않게 여기셨다. 원룸에 침대와 화장대, 침대만 채워 넣는데도 그렇게 설렜다. 3년 후 아이를 출산했을 때 아이의 물건들을 둘 공간이 부족할 것 같아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알콩달콩 신혼생활에서 복닥거리는 육아생활로의 전환, 너무 다른 삶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은 로션하나 바르거나 머리를 말릴 시간도 부족했다. 가끔 우리는 신혼집 마인빌 오피스텔이 생각나서 일부러 한번씩 그곳을 지나가며 그때를 회상하곤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저기가 엄마와 아빠가 처음에 살던 집이라고 이야기해줬다.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지만 보여줄 길이 없다. 김환기의 추억이 캔버스에 담겨져 있다면 우리는 스쳐간 휴대폰 메모리 속에 있다. 좀처럼 꺼내어 봐지지 않는다. 우리는 처음라는 것에 수 많은 추억과 기억에 의미부여를 하고 잊을만하면 한 컷씩 꺼내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넷이산방     


두 번째 집은 1층이었는데 습기로 인해 곰팡이가 많은 지도 모르고 계약을 하고 2년간 거기서 아이를 키웠다. 아이는 호흡기알러지로 인해 입원만 8번을 하게 되었다. 독한 육아의 시기였다. 세 번째로 이사 온 아파트는 산이 가깝고 녹음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마운틴뷰였다.

비슷한 시기 앞 큰 도로 쪽에 집을 산 분은 엄청나게 집값이 오르는 횡재를 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피톤치드 향이 올라오고, 베란다 밖은 녹음이 짙고, 난간에 다양한 새들이 놀러 왔다. 밤이면 소쩍새 우는 소리가 메아리쳐 들리고, 아침에는 목소리가 다른 새들이 합창을 했다. 로가의 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돈과 바꿀수 없는 걸 얻었다.

봄이면 베란다 앞산에서 햇빛을 머금은 노란 개나리가 뿜는 반짝이는 빛에 눈이 부셔 잠이 깼다. 가을에는 단풍이 진하게 물들어서 시야를 사로잡는다. 겨울에는 산에 쌓인 함박눈에 입이 쩌억 벌어진다. 여기가 바로

넷이산방이로다.  

  오늘은 아들이 주제 일기를 쓰고 내게 읽어봐 달라며 가지고 왔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게 신통하다. 계속 둘만 살았다면 못 느꼈을 것이었다. 아이가 세 살 때 어린이집 원장님이 물었다. “찬솔이는 가장 소중한 게 뭐야?” 보통은 좋아하는 장난감을 이야기하는데 가족이라 대답해 놀라셨다. 세 살짜리의 대답답지 않았다는 것이다. 몇 년이 지나도 한결같은 대답을 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복닥이며 넷이산방에서 좋은 꿈꾸자.

4학년 큰 아이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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