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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ramram Feb 03. 2022

결혼하려고 보니 내 통장 잔고는 4만 7000원

잠시 앉아서 생각해봐야 했다. 내가 직접 들었던 얘기와 보았던 글을 종합해보면 결혼은 돈이 있어야 한다는 보편적인 결론에 도달했었는데, 이미 잔고를 가늠하고 있는 나는 주거래 은행 어플을 여는 곳조차 두려웠다. 

 ‘잔액 47,320원’

 나를 항상 이해해주던 내 안에 착한 자아도 이때만은 “이 친구야. 이건 좀 너무하지 않냐? 서른 가까이 되어가지고 어떻게 300만 원 이상 모은 적도 없니?” 따끔한 지적을 하며 팩트로 나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지만, 나는 그 와중에 ‘술 두 번은 먹을 수 있겠네’라는 생각을 하며 철부지의 면모를 보였다. 

 어찌 된 영문인지 어렸을 때부터 주머니에 있는 돈은 친구들과 모조리 써버려야 하는 독특한 성향을 지녔다. 엄마는 그런 내게 특단의 조치로 열악한 용돈 체계를 발동했지만, 나는 그에 굴하지 않고 내가 쓸 돈 내가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급자족했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 때 시작한 내 인생 첫 아르바이트가 패스트푸드점에서 감자튀김을 튀기는 일이었다. 그때도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라 매일 짧게 일했지만, 한 달 월급은 고작 17만 원이었다. 15년 전의 일인데도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그때 운동화를 욕심내서 하나 사버렸는데 그게 17만 원이었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감자튀김과 내 손가락을 같이 튀겨가며 벌은 돈이 신발 한 개 값이었다. 그 당시 조금 비싼 신발을 사긴 했지만. 원래 학생 때는 신발이 그 사람의 신분을 알려주기 때문에 요즘 말로 플렉스 해버린 것 같다. 

 그 이후에도 나는 편의점부터 예식장 일일 홀서빙, 세트장 설치 아르바이트 등 학생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혼자 일자리를 구걸하러 갔다. 특히 당일날 바로 일당을 지급해주는 곳을 선호했는데, 이유는 그날 저녁에 바로 돈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친구가 말했다.

 “너는 막노동하는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겠다. 막노동하는 사람들도 그날 벌고 그날 저녁에 술 마시면서 돈 다 쓰고, 그런 하루가 계속 반복된다던데.”

 “그게 그 사람들이 하루를 정리하는 방법이나 어떤 원동력인가 보지”

 품격 높은 인생의 낭만을 떠올리며 그 당시 내가 잘 살아가고 있다고 느낄 때도 있었지만, 지금과 마찬가지로 철이 없던 건 분명했다. 앞을 선명하게 내다보지 않았고, 내 방식이 정답이라고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고, 그리 철저하지도 못했다. 내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은 것도 결국 배려와 존중이 부족한 걸 의미했고, 그 뜻은 내가 그리 성장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었으니 저축이라는 단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내 성향을 어느 정도 꿰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른 가까이 내 통장 잔고는 십만 원대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백만 원 대를 유지하는 건 월급을 받고 나서 5일까지가 아마 최대치일 것이고, 그 후 2, 3주간 정도 쭉쭉 내려가는 잔고를 보는 것도 내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고 말았다. 

 ‘하... 내 인생을 후회하는 것도 이제 진절머리 난다’

 지나간 내 인생에 대해 후회를 하는 것도 시도 때도 없이 하니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매번 사람 불편하고 어색하게 하는 건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변해야 하는데, 철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제발 좀 알고 싶었다. 제발까지는 아닌가?

 예식장에서 신을 구두 하나 살 돈도 없으니 그래도 구조요청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은행 다니는 친구에게 매번 그랬듯이 대뜸 전화를 걸었다.

 “잘 사냐?” 일본에서 같이 살았던 룸메이트이자, 고등학교 때부터 베프인 친구다. 

 “응. 아. 겁나게 바쁘다. 오랜만이다?” 

 “어. 뭐 좀 물어보게. 나 마통(마이너스 통장) 뚫으면 얼마 나오려나? 마통 이자는 요즘 몇 프로야?” 그동안 안부를 물으며 사람 냄새를 풍길 생각도 했지만, 귀찮아서 용건을 바로 얘기했다.

 “너 마통은 처음인가? 지금 끼고 있는 대출 있어?” 

 “처음이지. 다른 건 없고, 아. 학자금도 껴야 하나? 지금 대학원 학비, 학자금 대출인데” 순간 깨달은 건 세상살이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은 나였다. 

 “응. 포함되지. 그래도 직장도 있고, 한 삼천은 나올 것 같은데? 이자는 한 3,4%대로?”

 나는 다음날 바로 회사 앞에 있는 은행을 찾아가 난생처음 대출상담을 받았다. 나같이 세상 물정 모르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출은 그저 무서운 것으로 인식되어있는 탓인지 대기하는 순간에도 죄짓는 사람처럼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마이너스 통장 좀 만드려고요”

나를 응대하는 은행원의 직급은 대리였고, 나이는 많아야 30대 중반으로 보였다. 상당한 미모를 가지고 있었고, 그녀가 내게 좋은 소식을 줄 것 같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혹시 마이너스 통장은 왜 만들려고 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첫인상부터 참 똑 부러지는 사람이었다. 

 “네... 결혼 비용 때문에 목돈이 필요하거든요”

 “네. 잠시만요”

 그 이후에는 다니는 직장, 월급, 주거래은행, 현 대출 유무를 파악하는 질문들이 이어졌고, 알고 보니 내가 찾아간 은행은 회사와 연계돼있는 은행이었는데, 그런 만큼 내 결혼 과정에 있어서 첫 번째 관문을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잠시 정적이 흐르고 있던 가운데, 평소 같았으면 죽은 듯 가만히 있었을 나였지만 뜬금없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왠지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숨어있었나 보다. 

 “젊어 보이시는 데, 직급이 벌써 대리시고... 능력 있으시네요” 여기에 존경하는 눈빛까지 덤으로 발사했다.

 “네? 아니에요. 저 나이 많은데...” 서류를 정신없이 정리하거나 복사하는 와중에도 내 쓸데없는 말들에 수줍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아. 죄송해요. 저는 제 또래로 봐가지고....” 수백 번은 듣거나 뱉은 뻔하디 뻔한 말들이었지만, 그래도 그런 피나는 노력 끝에 이제 그 연기는 누구보다 능숙하게 해내지 않는가. 사실 실제로 그 대리가 엄청난 동안이기도 해서 피나는 노력까지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누가 보면 치근덕대는 진상 고객으로 보일까 봐 나는 거기까지만 하고 그를 더 귀찮게 하지 않았다.

 “나이 좀 들면 젊어 보인다는 말이 제일 좋더라고요. 다 되셨어요. 일단 심사를 해야 되는데 길어도 일주일 안에는 되고, 다 되면 제가 바로 연락드릴게요”

 그러고 며칠 뒤, 내가 대출 신청을 했었는지 잊어버릴 때쯤 전화가 왔다. 왠지 과정이 순조롭다 생각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인생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심사가 완료됐는데요. 좀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어요. 주거래 은행이나 소득이 높은 편도 아니시고, 학자금 대출도 있으시고...” 아니, 돈 못 버는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대출마저 내 쥐꼬리만 한 월급이 발목 잡다니...

 “아.... 어떡하죠? 저 결혼해야 되는데... 저 그러면 결혼 못해요. 어떻게 안 될까요?” 막막하고 당황한 터라 아주 극단적이고 처절한 떼쓰기에 돌입했다. 내 주특기이기도 하다.  

 “아이고....” 상대방이 당황하는 목소리를 들었지만, 문득 떼쓰면 될 것 같기도 하는 느낌이었다. 계속해서 장난감을 사달라는 어린아이처럼 논리 없이 10분 넘게 떼를 쓰기 시작했고, 그러고 정확히 이틀 뒤에 나는 2000만 원이 넘는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다. 역시 이 세상은 생떼가 최고야. 

 마이너스 통장이 개설됐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복권에 당첨된 것 같이 기쁘기도 했다. 그러다 혼자 ‘지킬 앤 하이드’ 연기를 선보이며 갑자기 진지해지기도 했다. ‘뭐야 나 지금 왜 기뻐하는 거야?’ 어쩌면 내가 조금씩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인간으로 되어가고 있는지도.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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