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상자의 뽁뽁이를 보면
손끝으로 터트리고 싶다
매끄러운 감촉의 공기 방울들
올록볼록한 보호막의 착시현상이
슬픔을 지닌 여인의 얼굴을 흐릿하게 가려주는
*인물화를 본 적 있다.
방향을 잃고 맴돌다
오래 걸어 생긴 발바닥의 이물감이나
다리에 생긴 화상의 통증을 기억한다
분노나 적대감으로 생긴 갈등이나
너무 가까워 화상이나 동상으로 부풀어 오른 물집은
터트려야 치유할 수 있다.
너와 나, 뜨겁거나 차가웠던 마음
물방울이거나 꽃이었던가,
불꽃이거나 얼음이었던가,
당신의 배려와 사랑으로만 감쌀 수 있는
얼음 칼날에 베인 가슴
적절한 보온이 필요할지 모른다.
하나, 둘,... 부풀어 오른 물방울 속
창밖의 굴절된 풍경이 오래된 기억처럼 흐릿하다.
안과 밖, 급격한 온도 차이
밤새 물멍울 피워내던 하얀 성에꽃들,
유리창에 뽁뽁이를 붙인 경험이 있다
물집의 흔적은
떼어내야만 온전히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방치하면, 가려움이 또 다른 아픔을 불러올 수 있다.
비닐처럼 눌어붙어 떼어내기 어렵다
창가에 놓인 화분의 사철나무
누런 마른 잎을 떼어내고 있다
톡, 토독, 톡,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해마다 연녹색 작은 잎이나 꽃 멍울 피워 올리는
꽃이나 나무들도 상처를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
시작노트:
현대인들이 겪는 상처와 치유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상처와 회복의 복합적인 감정을 담아내고자 합니다. 이 시는 일상적인 소재인 '뽁뽁이'(에어캡)를 통해 삶의 상처와 그 치유 과정을 은유적으로 풀어낸 것입니다.
"택배 상자의 뽁뽁이를 보면 손끝으로 터트리고 싶다"라고 언급한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에어캡의 공기방울을 터트리고 싶다는 본능적인 욕구를 드러낸 것입니다. 이는 일상적인 행동처럼 보이지만, 뽁뽁이의 공기 방울을 "물집"에 비유하며 이를 상처의 표상으로 확장하고자 한 것입니다.
"물집"은 신체적 상처이자 심리적 상처의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시는 상처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 타인이 그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며, 인간 내면의 고통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상처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터트려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고통을 직면하고 표현함으로써 치유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으로, 발바닥의 물집이나 화상의 기억을 통해 신체적 상처와 감정적 고통이 유사하다는 점을 암시하며, 이 고통이 외부에서 발생한 것임에도 스스로 해결해야 함을 시사합니다. 이는 우리가 주변 환경과의 갈등이나 충돌 속에서 상처를 받지만, 결국 치유는 개인적인 과정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거실의 유리창에 뽁뽁이를 붙이는 행위는 단열을 위해 외부의 차가움을 차단하여 따뜻한 실내와의 온도차로 생기는 결로 현상을 막기 위한 일종의 보호 장치이지만, 이는 감정적인 방어 기제를 상징하며, 지나치게 차갑거나 뜨거운 마음은 균형을 잃고 결로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감정의 온도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입니다. 즉 마음의 보호와 감정 조절이 상처의 치유에 필수적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포장용 뽁뽁이를 보면 터트리는 버릇이 생겼다"라고 고백하며, 상처를 터트리는 행위가 습관화되었음을 고백하지만, 이는 고통을 직면하고 터트리는 것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임을 나타냄을, 그리고 거실의 사철나무가 비명을 지르듯이 상처를 드러내는 과정 역시 자연스러운 것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즉 뽁뽁이를 상처의 은유로 삼은 것은 일상적인 사물을 통해 삶의 복잡한 감정을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전달하려는 의도입니다. 상처는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며, 그것을 마주하고 직면함으로써 치유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 시는 상처와 치유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내는 소리와 마른 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인간의 상처가 터지는 소리로 연결하여, 자연 역시 상처받고 있다는 인식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고통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상처와 치유의 보편성을 표현하고자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