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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오늘의 시낭송

by 김승하


https://youtube.com/shorts/Ua0dZDIOKbw?si=OFetVOgTChHre-N9

로또12.png

간밤에 기분 좋은 꿈

한 노인에게서 큰 붓을 받는 꿈을 꿔서

로또를 사러 갔다


행운의 숫자는 몇 번일까

가족 생일을 적어볼까

아내와 결혼한 날짜를 넣어 볼까


한 젊은 사내

메모지에 빼곡하게 적힌 숫자를 보며

수십 장의 로또를 사고 있었다

얼마나 답답하면 로또에 올인할까


생각해 보면 30여 년

착하고 바르게 자라온 아들과 딸,

무탈하게 살아온 아내


나보다 열한 살 젊은 아내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시나 쓰며 사는 노년의 삶


나는 이미 로또에 당첨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이 꿈에서 깨면

로또 맞은 삶 탕진한 사내 아닐까


시작 노트: 삶의 진짜 로또 ‘당첨’은 무엇인가


이 시는 ‘로또’라는 물질적 당첨 개념을 빌려, 시인의 삶과 가족을 돌아보는 존재적 반성의 시입니다. 현실의 불확실성을 ‘복권’에 기대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면서, 시인은 정작 이미 얻고 있는 것들 — 가족, 무탈한 세월, 글을 쓸 수 있는 여유 —이야말로 가장 값진 당첨이라는 자각에 이릅니다.


이는 허무와 감사, 기대와 깨달음 사이를 가로지르며, 시에 단순한 감상을 넘는 깊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삶의 행운은 이미 내 안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로또 구매라는 일상적 풍경에서 시작해,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나는 어떻게 살았는가?”라는 물음을 끌어내고자 했습니다. 마지막 2연은 앞선 ‘감사’의 흐름을 일부러 깨트리며, 긴장과 아이러니를 만들어 내고자 했습니다. “이 꿈에서 깨면 / 로또 맞은 삶 탕진한 사내 아닐까?”


전반적으로 시의 문장은 평이하지만, 그 안에 절제된 감정과 위트가 깃들어 있습니다. “얼마나 답답하면 로또에 올인할까” 이 구절은 관찰, 연민, 비판, 자기 반영이 모두 반영된 함축적 의미를 표현한 것입니다. 문어체와 구어체를 적절하게 섞고, 은유나 상징이 과잉되지 않도록 하여, 시적 진정성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 시의 감정선은 단순히 ‘좋은 삶에 대한 감사’로 끝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고마움과 성찰이 흐르지만, 다음과 같은 삶의 불안한 뒷그림자도 함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꿈에서 깨면 / 로또 맞은 삶 탕진한 사내 아닐까?”라고, 토로하며, 현실이 꿈이었다면 어쩌나 하는 불확실성과 현재에 안주하는 자신에 대한 자기비판도 함께 표현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잃을지도 모른다’라는 불안을 한꺼번에 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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