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낭송
https://youtube.com/shorts/P_ehe-uEjPM?si=Bp4EsPAh7N37GA3N
나에게는 구멍이 많다
여기도 구멍
저기도 구멍
내 삶의 담벼락은 구멍 천지다
구멍이 많아 슬플 때는
슬픔이 모든 구멍으로 흘러넘칠 때는
하루 종일
검은 돌이나 삼킨다
돌을 삼키고
구멍 숭숭 뚫린 담벼락이
나를 삼키고
오냐, 큰 구멍이여
오려면 와라
정중하게 와서
나를 통째로 삼켜라
나는 구멍과 싸운다
구멍은 슬픔이고
구멍은 나의 적이고
구멍은 나의 동지이고
구멍은 운명이다
흰 돌을 게워 낼 때까지
내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이홍섭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 시집의 표제 시 <구멍>이란 시를 소개한다. 이홍섭 시인을 우연히 몇 번 만난 적 있지만, 그의 인상처럼 그의 작품은 간결하다. 그의 작품을 보면 선승을 떠올리게 된다. 그의 어눌한 말투처럼……. 툭, 툭, 던지는 선승의 화두처럼 그의 시는 단단한 돌이 되어 가슴에 와닿는다. 그 돌들은 중력을 무시하는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흡인력을 갖고 있다.
<구멍>은 검은 돌의 또 다른 모습일지 모른다. 작은 검은 돌 <구멍>을 삼키면 점점 더 커진 <구멍>은 마침내 자신을 삼키는 커다란 블랙홀일지 모른다. 그의 삶은 담벼락처럼 단단한 의지로 버티지만, 자세히 보면 수많은 구멍, 즉 상처로 이루어져 있다. 슬플 때는 하루 종일 돌처럼 단단하게 굳은 상처를 삼킨다.
이홍섭 시인의 <구멍>은 온몸에 난 상처이지만 실상 그 상처는 잔잔한 수면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수지처럼 주변의 상처를 삼키는 블랙홀이다. 그 블랙홀은 상처가 굳어 돌이 된 검은 돌을 삼킬 뿐 아니라 그 자신을 삼킬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당당하지만 정중하게 올 테면 오라고 말한다. 삶에 대한 그의 당당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구멍>은 그의 슬픔이고, 적이고, 동지이고, 그 자신의 운명이지만 그 블랙홀에서 검은 돌(상처)이 정화되어 흰 돌을 게워 낼 때까지 시인의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임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삶의 관조적 자세가 보인다.
김승하 시인/kimseon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