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이보그 2

오늘의 시낭송

by 김승하

https://youtube.com/shorts/1ajHCmRDki8?si=ZBpOegTArzQ3a72h

사이보그2-4.png

고약한 냄새 풍기던 마지막 사랑니와

몇 개의 어금니를 뽑고 임플란트를 한다.

잇몸 뼈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볼트를 박는다.

마취해서 통증을 느낄 수 없다.

조금씩 기계 인간이 되고 있음을 감지할 뿐이다.

그는 최근에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가려듣는

보청기를 착용하면서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흥분하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잦아졌다.

며칠 전 Y 정형외과에 가서 삐걱거리는 어깨와

무릎에 X-RAY를 찍기도 했다.

의사는 갱년기 탓이라고 했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무릎은 플라스틱 인공관절로

교체하거나 주기적으로 볼트를 조여주면 된다.

그는 유리창 밖, 신축 상가의 철골을 조립하고 있는

타워크레인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더 이상 사랑 따위는 필요 없는 것일까

사랑니를 뽑은 자리가 허전하다.

낡은 장난감 레고 블록처럼 삐걱거리는

무릎이며 어깨 어디쯤인가 조금씩 낡아가는

그는 사이보그로 퇴화하고 있다.

사이보그2-3.png

시작노트: 「사이보그 2」


나이가 들수록 우리의 몸은 인공물로 대체되어 갑니다. 사랑니를 뽑고 임플란트를 심고, 무릎과 어깨엔 인공관절이, 귀에는 보청기가 들어섭니다. 이 시는 인간성이 사라지는 불안과 여전히 사랑을 붙잡으려는 모순된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사랑니의 상실은 젊음과 감정적 순수성의 결핍을,임플란트와 인공관절은 생존을 위한 불완전한 패치워크를 상징합니다. 낡은 레고 블록처럼 이어 붙인 몸, 기술이 약속한 미래형 사이보그는 과연 인간의 진보일까요? 창밖의 타워크레인을 바라보며 묻습니다. “더 이상 사랑 따위는 필요 없는 것일까.” 기계적 편의 속에서도 결국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 것은 사랑과 감정, 그리고 유기적인 삶의 순환이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이 시는 화자의 신체가 기계로 대체되는 과정을 인간성의 상실과 회복의 모순적 서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사랑니의 상실에서 시작하여 임플란트, 인공관절, 보청기로 이어지는 기계화의 단계적 진행으로 인간성의 상실을 그려가고 있습니다.

사랑니는 보통 사랑을 알게 되는 나이에 나는 이로, 첫사랑의 가슴앓이처럼 통증을 동반한다는 문화적 상징을 지닙니다. 이빨을 뽑는 행위는 단순한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젊음과 감정적 순수성, 그리고 첫사랑의 아픔을 상징하는 한 부분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로 남은 허전함이라는 구절은 물리적 상실이 아닌 감정적 공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시의 핵심적 모티프입니다.

임플란트와 인공관절로 이어지는 과정은 가장 적나라한 기계화의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잇몸 뼈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볼트를 박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노화 대신 기술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신체를 대체하는 폭력적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삐걱거리는 어깨와 무릎에 인공관절을 교체하거나 주기적으로 볼트를 조여주면 된다는 의사의 말은 육체적 고통을 감정이 배제된 기능적 문제로만 치환하는 현대 사회의 냉담한 태도를 반영하고 있으며, 신체의 기계화는 단순히 통증을 해소하는 기능을 넘어, 인간의 유기적인 존재감을 차가운 볼트와 철골의 감각으로 치환한 것입니다.

이러한 신체의 기계화는 심리적 왜곡으로 이어짐을 암시합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가려듣는 보청기는 기술이 인간의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에 지니고 있던 편향성을 증폭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리적 청각 기능의 보완은 오히려 감정적 편향성을 심화시켜 화자를 쉽게 흥분하고 눈물을 흘리는 불완전한 상태로 이끌게 되고, 기술은 인간을 합리적으로 만들기보다, 본래의 취약성을 증폭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마취 덕분에 물리적인 통증을 느낄 수 없듯, 화자는 조금씩 기계 인간이 되고 있음을 감지할 뿐입니다. 이는 육체적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 오히려 존재론적 불안으로 이어지는 현대인의 경험을 암시합니다.

「사이보그 2」는 기술이 인간의 신체를 강화하여 초월적 존재로 만드는 긍정적 미래상과 달리, 노화에 따른 기능적 상실을 보완하는 퇴행적 사이보그를 그리지만, 이는 기능적 완전성이 인간의 감성적, 정신적 완전성을 대체할 수 없다는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시적 화자는 '걱정할 필요 없다'며 기술에 의한 문제 해결을 수용하지만, 그 이면에는 더 이상 사랑 따위는 필요 없는 것일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이는 현대 사회가 제공하는 편의(convenience)와 기능적 완결성 이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와 감정을 퇴색시키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현대 시각 예술에서 메카토르소라는 개념은 기계적 보철을 통해 전투 능력이나 성적 매력을 강조하는 미적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사이보그 2」의 화자는 이러한 미적 이상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그의 몸은 아름다운 보철물이 아닌, 삐걱거리는 낡은 장난감 레고 블록과 같다고 느낄뿐 입니다. 이는 기술적 보완이 아름다움이나 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오직 기능적 생존을 위한 낡은 패치워크에 불과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자연의 유기적 순환과 기계의 인위적인 재생산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죽음과 재생을 상징하는 '물/바다'의 이미지를 통해 자연의 유기적 순환 체계를 탐구하는 예술 작품이 있듯이 , 「사이보그 2」는 이와 정반대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랑니를 뽑고 임플란트를 박는 것은 자연적 순환이 아닌 인위적인 재생산입니다. 화자가 철골을 조립하고 있는 타워크레인을 바라보는 모습은 이러한 인공적 순환의 극단적 예시이며, 이는 자연이 돈으로만 환원되는 현실 과 맞닿아 있습니다. 화자가 이러한 풍경을 보며 더 이상 사랑 따위는 필요 없는 것일까? 라고 중얼거리는 것은, 자연적이고 유기적인 순환을 잃어버린 인간의 자화상을 기술, 사회의 차가운 풍경 속에서 발견하는 순간을 포착한 것입니다.

2025.08.24. 김승하,kimseonbi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이보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