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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과녁속에 둥지를 틀지 않는다

오늘의 시낭송

by 김승하


https://youtube.com/shorts/Sb6gyPiqJlo?si=2elKydw0ZrQuHT3s


시청 앞 은행나무는 가슴에 과녁을 품고 있다

은행나무3.jpg

저를 향해 구린내를 마구 터뜨린다

가끔 은행 터는 할머니 꽃무늬 치마폭에

한 움큼 익살을 던져주거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가온 중년의 사내

툭, 툭, 발길질하며 수작을 걸 때

부르르 몸을 떨다가도 못 이기는 척

후드득, 오니 탄을 터뜨리지만

과녁을 벗어난 불발탄이 더 많은 것은 아량인가

가지마다 다닥다닥 붙여둔 기억들,

노란 포스트잇 나비 떼가 되어 날아오르는

너무 오랜 상상은 변비를 앓고 있는 것일까

욕망은 항상 구린내를 품는 것이어서

저를 지우며 구린내를 품는 것일까

투덜투덜 매연 뿜어대는 자동차들

소화불량을 앓는 로터리, 서로의 상대만 확인한 채

마주 보고 있는 시위대와 전경들

은행나무는 바리케이드로 서서 구린내를 터뜨린다.

저마다 가슴에 동심원으로 그린 나이테

세월의 물결 무늬 과녁 하나씩 지닌 채

가지마다 총알총알 구린내를 장전하고 있다

은행나무가 끙~하고 몸을 뒤튼다

후드득, 후드득, 저를 향한 오니 탄이 쏟아진다

광장의 외로움 물이랑처럼 밀려올 때마다

흩어지는 새떼들, 바늘구멍만 한 조준경 속

확대와 축소의 공간 사이, 푸른 하늘을 비상하는

새들은 과녁 속에 둥지를 틀지 않는다



새들은 과녁 속에 둥지를 틀지 않는다 / 시작노트

은행나무4.jpg

도시 한가운데 서 있는 은행나무는

사람들이 남긴 발자국과, 오래된 냄새와, 욕망의 그림자들이

가을이면 더 짙게 묻어나는 나무입니다.

누군가는 악취라고 했지만, 저는 그 냄새 속에서

도시가 숨기지 못한 진짜 얼굴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어느 날, 저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새들은 왜 과녁 속에 둥지를 틀지 않는가.’

조준당하는 자리에서는 누구도 안온할 수 없다는 단순한 진실처럼,

도시는 매일 우리에게 무언가를 겨누며 살라고 요구하는지도 모릅니다.

은행나무2.jpg

이 시는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스친 그 순간의 이미지와

도시를 살아가는 몸의 피로,

그리고 서로를 향해 겨누고 사는 인간의 오래된 습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나는 길가의 나무일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도시의 숨결과 내면의 과녁이 함께 새겨진

또 하나의 자화상이었습니다.

은행나무5.jpg

그 나무가 떨며 터뜨리던 ‘구린내’는

어쩌면 제가 오래도록 지우지 못한 삶의 냄새와도 닮아 있었는지 모릅니다.

독자 여러분이 이 시를 읽으며

도시가 품고 있는 각자의 과녁과 냄새, 흔들리는 마음의 중심을

잠시나마 들여다보기를 바랍니다.

2025.11.28., 김승하,kimseon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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