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간호사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남학생
면역수치가 0에 가까워진 몸은 작은 균조차 이겨내지 못했다.
점막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곳곳에서 염증이 생겨났다.
오른쪽 가슴의 상처는 화상을 입은 듯 열감이 있었고
따끔거림이 가라앉지 않아 드레싱을 받을 때마다 고통이 올라왔다.
구내염은 더 심해졌고, 잇몸에서는 출혈이 시작됐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짜디짠 생리식염수로 가글을 했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심해진 구내염 때문에 음식을 삼키기는커녕
말을 하는 것도, 침을 삼키는 것도 힘들었다.
우유와 같은 액체류를 먹어도 대부분 구토를 해
어떤 음식도 섭취하지 못했지만 혈관으로 영양을 공급받아
대변 활동은 이어졌다.
하지만 항문 점막 역시 약해져 있던 탓에 치질이 심하게 생겼다.
살이 빠져 도드라진 엉덩이뼈가 바닥에 닿는 것만으로도 아픈데
그 위로 치질까지 겹치니 앉아 있는 일은 더 고통스러웠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치질’이라는 말만 들어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당시 의료진 대부분이 여자였기에 더더욱 말하기가 어려웠다.
숨기고 싶었다.
알린다면 교수님께만 알리고 싶어 간호사 선생님에게 따로 호출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 상태를 보시자마자 바로 의료진에게 알리셨다.
간호사 선생님이 병실로 와 확인했고 곧장 교수님께 보고가 들어갔다.
덕분에 빠른 조치와 처방이 이루어져 상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잡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머니에게 온갖 짜증을 냈다.
“내가 교수님께 말하려고 했는데 왜 간호사 선생님께 이야기했냐”는 말로
화를 냈다.
어머니는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알려야 빨리 치료할 수 있지 않겠냐”라고
부드럽게 타일렀지만 그 말이 납득되기보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간호사선생님에게 치질을 보였다는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그동안의 병원 생활에서 쌓인 정신적 스트레스를 어머니에게 짜증으로 표출했다.
의료진이 시키는 대로 최선을 다해 따라왔음에도 몸 상태는 하루하루 안 좋아졌고
1평 남짓한 무균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했지만 끊임없는 통증과 시련은 나를 계속 지치게 했다.
“나는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할까.”
“이 정도의 고통을 받을 만큼 내가 잘못한 게 있었던가.”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감정들을 나는 어머니가 의료진에게 알렸다는 사실에
도화선을 삼아 나의 모든 분노를 어머니에게 쏟아냈다.
어머니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말씀에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바라보지도 못한 채 무균실 보호자 침상에 앉아
그저 조용히 나를 지켜보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