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는 어려워
이번 무균실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몸이 쇠약해져 갔다.
C-line을 심었던 자리는 염증이 생겨 피부가 화상을 입은 듯 흉 지고 진물이 올라왔다.
상처 위로 소독약이 닿을 때마다 작은 불씨가 튀는 것처럼 아팠다.
폐까지 번진 곰팡이균을 잡기 위해 항암제는 중단됐지만
그 대신 온갖 항생제가 몸속으로 들어왔다.
항암 할 때보다 더 많은 약들이 줄줄이 연결돼 있었다.
약물의 부작용이었을까 음식은커녕 물 한 모금만 삼켜도 토를 했다.
부족한 영양과 수분을 채우기 위해 영양제가 항생제 사이를 비집고 주렁주렁 달렸다.
몇 가지나 되는 항생제, 수액, 영양제는 모두 손등의 혈관을 통해 공급받았다.
어렵사리 바늘을 꽂아도 항암치료로 약해진 혈관은
이틀도 버티지 못하고 터지거나 막혔다.
막혀버린 혈관은 손가락조차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부어올랐다.
하지만 나는 새 바늘을 다시 꽂아야 한다는 두려움에 그 통증도 뒤로 한채
조금이라도 오래 버텨주길 바라며 의료진에게 아픈 걸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혈관은 꽉 막혀 수액조차 흘려보내지 못해 다시 주사를 잡아야 했다.
노인보다 더 가늘고 약해진 내 혈관에 새 주사를 놓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신규 간호사는 물론, 연차가 높은 간호사 선생님들조차도 한 번에 성공하지 못했다.
바늘이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따끔함은 참을 만했지만, 들어온 바늘이 손등 속을 더듬으며
혈관을 찾는 순간은 견디기 힘들었다.
어느 날은 담당 간호사 선생님이 실패해 다른 병실 선생님이 오셨지만
그분도 실패했다. 그 뒤로 오신 분들도 계속 실패했고
총 다섯 분의 선생님이 돌아가며 시도한 끝에 아홉 번째에서야 주사가 성공했다.
그날 이후로 간호사 선생님들은 내게 주사 놓기를 조심스러워했고
나 또한 주사를 새로 갈아 끼는 날이면 몸이 먼저 긴장했다.
겨우 연결한 주사 라인으로 영양제가 천천히 들어오면 배고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배고픔보다 구역질과 어지러움이 먼저였던것 같다.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감정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최악의 컨디션 속에서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이 고통이었다.
먹은 게 없는데도 계속 구역질이 올라왔다.
앉아 있으면 땅이 빙빙 도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살이 빠져 앙상해진 엉덩이는 바닥에 눌릴 때마다 뼈가 직접 닿는 것처럼 아팠다.
어지러워 누우면 다시 구역질이 올라오고 힘들어 앉으면 엉덩이가 아파 오래 버티지 못했다.
계속해서 눕고, 앉고, 다시 눕기를 반복해 가며 그 사이에서 흔들거리며 버텼다.
이 지루하고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버틸 다른 방법도 없었다.
지금처럼 OTT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던 때였다.
설령 있었다 해도 그 무언가를 할 힘조차 내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