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지.
이틀간 집에서 짧은 휴식을 마친 뒤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입원 첫날, 다시 항암이 시작됐다.
약이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은 서서히 추워지기 시작했다.
추위가 몰려오더니 이내 오들오들 떨림이 찾아왔다. 체온을 재보니 38.5도. 패혈증이 의심돼 곧바로 여러 가지 균배양 검사가 진행됐다.
중심정맥관(C-Line)을 착용하고 있던 나는 감염의 출처가 그 라인인지, 몸에서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C-Line과 별도로 주사를 통해 혈액을 뽑았다.
패혈증 검사는 피부의 세균이나 공기 중 균이 섞이지 않도록 멸균 상태에서 진행되어야 했다. 그래서 인턴은 음압이 적고 혈액이 잘 흘러나오도록 18 게이지의 굵은 바늘로 10~20ml 정도의 많은 양의 피를 사타구니 안쪽의 대퇴정맥에서 뽑았다.
건강한 사람의 혈관은 두껍고 탄력 있지만, 암환자의 경우 항암제와 항생제가 혈관의 내피세포까지 손상시키기 때문에 가는 바늘로도 혈관이 터질 만큼 얇고 약해져 있다.
그렇기에 아무리 말초보다 굵은 대퇴정맥이라 해도 아직 숙련되지 않은 인턴이 굵은 바늘로 채혈하는 일은
환자에게도, 인턴에게도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병동의 콜을 받고 달려온 인턴 선생님은 피곤이 잔뜩 묻은 얼굴에 뚱뚱한 몸을 헐떡이며 나타났다.
식사는커녕 잠은 언제 잤을까 싶은 퀭한 눈빛이었다.
침상 커튼을 치고, 이불을 걷어내고, 내 다리 위로 멸균 드레이프를 펼쳤다.
추위에 덜덜 떨고 있는 나와 달리 인턴의 얼굴에는 땀이 흘렀다.
그는 내 허벅지 안쪽을 꾹꾹 눌러가며 대퇴정맥의 위치를 찾고 있었다.
눌러대는 그 손의 압력도 너무 아팠다.
한참을 더듬은 뒤에야 주삿바늘을 들었고 채혈을 위해 바늘을 찔렀다.
하지만 피는 나오지 않았고 인턴은 주삿바늘의 각도를 이리저리 돌리며 채혈을 시도했다.
주삿바늘이 피부를 뚫는 통증도 너무 아팠지만, 허벅지를 뚫고 들어온 굵은 바늘이 안을 휘젓는 느낌은 훨씬 더 아팠다.
한참을 휘젓던 인턴은 안 되겠는지 주사기를 빼고 지혈을 한 뒤 다시 시도했다.
두 번째 시도에도 한참을 휘저었지만 드디어 피가 바늘을 통해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열은 여전히 오르고 오한에 계속 떨던 내게 이 채혈시간은 너무나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인턴은 피를 한가득 채운 주사기를 들고 조용히 병실을 나갔고 곧이어 간호사가 들어와 팔의 말초정맥에 IV를 연결하고 항생제를 투여했다.
예전에 TV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한 여름, 해양 훈련을 받던 군인이 오한에 덜덜 떨며 실신하듯 쓰러지던 모습이었다. 그때 당시 한여름에 몸을 떤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나는 그 장면 속의 그가 되어 있었다.
오한은 단순한 추위의 떨림이 아니었다. 이불을 여러 겹 덮고, 핫팩을 몸에 붙여도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처음엔 미세하게 떨리던 몸이 점점 더 거칠게 흔들렸다. 스스로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 정도로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쉬지 않고 떨어대는 몸에 체력은 바닥났고 의지와 상관없이 미친 듯이 떨리는 몸 자체가 고통이었다.
나는 뜨거운 핫팩을 여러 개 끌어안고 새우처럼 웅크린 채 이불속에 몸을 푹 덮은 채 이 떨림이 멈추기만을 바랐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이나 나를 괴롭히던 오한은, 항생제와 약물 덕인지 조금씩 잦아들었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은 오한이 가시고 나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