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의 휴가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오른쪽 가슴에 달린 히크만을 통해 항암제가 서서히 혈관으로 흘렀다.
약이 퍼지자 이내 속이 뒤집혔다.
지난 항암 때도 구역질은 있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체력이 바닥난 탓일까.
단순한 구역질이 아니라, 메스꺼움이 더 깊고 오래갔다.
토를 하기 위해선 침상에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야 했지만
내 근육은 이미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였다.
내 몸 하나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해, 혼자서는 일어나지조차 못했다.
어머니가 침상을 세워 올려주시면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비닐봉지를 붙잡고 토했다.
아버지와 교대로 간병을 해주시지만, 집안일과 회사일을 병행하시며
간병하기란 여간 힘드실텐데 이런 사소한 일까지 어머니의 손을 빌린다는 게 참으로 죄송하다.
낮이든 밤이든 모든 시간이 고통스럽다.
깨어 있는 시간은 속이 늘 메스꺼웠고,
밤이 되어도 잠도 잘 오지 않아 밤새 뒤척이다 겨우 잠에 빠지곤 한다.
침상에 누워 있는 것도 자유롭지 못했다.
수술 부위의 실밥은 풀렸지만, 옆으로 돌아누우면 배가 쏠려 아팠고 엎드려 눕는 건 상상도 못했다.
한자세로 가만히 누워 잠을 자야 한다는게 이렇게나 불편할 줄이야.
며칠간 이어진 항암에 몸은 점점 쇠약져만 갔다.
그나마 매일 새벽 진행하는 혈액검사에서
백혈구와 호중구 수치는 아직 정상범위에 머물렀다.
계속된 항암으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컨디션이 나빠지자,
교수님께서 집에 가 조금 쉬다 오라고 하셨다.
이틀이라는 짧은 휴가가 주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니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지만, 컨디션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항암을 멈추자 토도 멈췄고 음식을 먹기가 조금은 수월하였지만 여전히 움직일 힘은 없었다.
귀하게 얻은 이틀의 휴식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만히 있는 것’뿐이었다.
잠시 쉬지 않고 병원에 남아 항암을 계속했더라면 몸은 더 고통스러웠을 테지만,
이렇게 쉬어도 쉰 게 아닌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았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이 병원 생활을 끝내고 싶었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빨리 끝내고픈 마음보다,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 시절의 유일한 희망이자 버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