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손
월요일 아침, X-ray를 찍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 오후 3시쯤 교수님께서 2층 외래센터에 있는 자신의 진료실로 나와 부모님을 불렀다.
X-ray 결과, 장에 세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고 가스랑 염증이 가득해서 당장 응급수술을 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왜 장에 구멍이 생겼는지는 정확한 이유는 수술 후 조직검사를 해봐야 정확히 안다고 했다. 지금으로선 정확하지 않지만 항암제 부작용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2월 17일, 응급실에 들어온 이후 중환자실, 혈액병동, 무균실까지 매 순간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수술을 하지 않음에 감사하였고, 제발 수술만큼은 안 하게 해달라고 기도에 매달렸다. 단순하게 수술이 무서워서 그랬던 건 아니다. 그 시절 '군인'이자 '파일럿'이라는 꿈을 꾸었는데, 지금의 병만 낫는다면 또래보다 1,2년 늦어진다 하더라도 꿈에 도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파일럿은 내게 단순한 직업 중 하나가 아니었다. 중학교 때까지도 잘하는 것 하나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살아가는 이유도 목표도 없어서였을까 학교 생활에 적응도 잘하지 못했다. 당연히 학급 성적도 최악으로 41명 중 38등이라는 꼴찌 수준이었다. 그런 내게도 간절히 바라는 꿈이 생겼고 스스로 하고자 움직였다.
A부터 Z까지 알파벳도 제대로 외지 못하던 내가 공부를 시작한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고1 종업식 때는 43명이 있는 반에서 15등까지 올랐다. 뛰어난 성적은 아니어도 그때의 난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일을 찾아내 해낸 경험이었다. 그만큼 파일럿이라는 꿈은 그 시절 내게 전부이자 원대한 목표였다.
그러나 그 꿈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이렇게 포기를 해야만 한다니 눈앞이 아찔했고, 머릿속은 하얘졌다. 나는 앞으로 뭘 위해 버텨야 하지? 이젠 뭘 해야 하지? 목표도, 방향도 모두 잃은 느낌이었다.
수술에 대한 두려움보다 그렇게 꿈꿔 왔던 목표를 포기해야 한다는 절망감에 빠진 채 울음을 참으며 진료실을 나와 병실로 올라가려는데 이웃집 할머니가 거기 계셨다. 아마 병실에 갔다가 자리에 없으니 간호사한테 물어 진료실로 오신 것 같다.
할머니 얼굴을 보는 순간, 꾹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시던 할머니의 손은 원래도 뼈밖에 없었는데, 흰머리가 나다 못해 이젠 백발의 머리로 볼살까지 쏙 빠진 할머니의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로 앙상해졌다. 수척해진 본인의 모습과 상반되게 옷차림은 매우 단정하고 깔끔하였다. 아픈 나를 보러 온다고 본인의 옷장에서 가장 깨끗하고 좋은 옷을 차려입고 오신 듯한데, 그 모습은 나를 더 가슴 아프게 했다.
힘없이 늙어버린 본인의 몸보다 내가 더 걱정되는 눈빛으로 할머니는 나를 바라보았다.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도 못 보는 요즘, 그만큼 보고 싶었던 분이었는데 하필 오늘, 꿈을 잃고 절망에 빠진 모습으로 할머니를 마주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한테 크게 혼나, 혼자 울면서 집으로 가던 길에 할머니를 마주친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그때도 “왜 울어, 무슨 일 있어?” 하며 나를 연신 걱정해 주었는데 오늘은 그때보다 더 고운 옷차림을 하였음에도 그때보다 더 야윈 두 뺨과 두 손으로 내게 애정 어린 걱정을 주었다.
그렇게 나는 2층 외래실 앞,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가운데 나는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아 선 채로 목이 잠겨 아무런 말도 못 하고 펑펑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