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회복실에서 외과병동까지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은 채, 말 한마디 못 하고 그저 펑펑 울기만 하다 헤어졌다. 마음은 뒤죽박죽이었고, 감정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꿈도 목표도 사라진 지금, 앞으로 이 병원 생활을 어떻게 버텨야 하나. 아픈 것만으로도 서럽고 힘든데,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꿈이 시도조차 못 해보고 포기해야 한다니 억울하고 너무 분했다.
그래서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처럼 아파서 꿈을 포기하는 아이가 생기지 않게 하겠다고.
그날 저녁, 나는 응급으로 수술실에 옮겨졌다. 보호자 없이 혼자 누운 수술실. 시술실보다 훨씬 크고 많은 의료진의 분주한 움직임과 기계들, 차가운 침대와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들은 나를 더 긴장 시켰다.
어떤 수술을 받는지도, 왜 수술을 해야 하는지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침대 위에 누워 두려워 떨고 있던 아이의 모습이 의료진 눈에 뻔히 보였겠지. 마취주사를 놓기 전 의료진은 내게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한숨 푹 자고 나면 괜찮을 거예요."라며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어주었다. 지난번 시술실 때도 그랬지만, 낯설고 두려운 공간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렇게 큰 위로가 될 수 없었다.
나는 곧 마취에 빠졌고, 의식은 서서히 사라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간호사 선생님이 깨우는 목소리에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눈을 떴다. 마취 후 합병증 위험 때문에 회복실에 잠시 누워 있어야 했는데 회복실은 꽤 추웠다. 몸이 덜덜 떨렸고,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떨림이 이어졌다. 간호사 선생님께 말씀드리자 따뜻한 담요를 여러 장 덮어주셨다.
어떤 수술인지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수술실 위에 눕자 한 의료진이 내게 와 마취를 투여하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한숨 푹 자고 나면 될 거라고. 지난번 시술실에서도 그렇고 의료진의 따뜻한 한마디가 그렇게 힘이 되더라. 낯설고 두려운 공간 속에서 한마디에 큰 힘을 얻으며 이내 난 마취가 되어 정신을 잃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간호사 선생님의 깨우는 목소리에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나는 깨어났다. 마취에서 깨어난 직후 합병증 발생 가능성이 있어 회복실에 잠시 대기했는데 회복실이 추워서였을까 내 몸은 점차 떨렸고 의지와 상관없이 떨림이 계속되었다. 극심한 추위로 간호사 선생님께 말씀드리자 선생님은 내게 따뜻한 담요를 여러 장 덮어 주었다.
회복실에서 한 시간쯤 지난 뒤, 나는 원래 병실인 8층 혈액종양내과가 아닌 7층 외과병동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마취가 아직 덜 풀려서인지 체내 고인 액체를 밖으로 빼내기 위해 배액관을 뚫은 오른쪽 아랫배가 쿡쿡 쑤시기만 했고 기운 없이 눈이 계속 감겨왔다.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날 바라보는 부모님이 보였지만, 나는 그냥 잠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외과병동 수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내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더니 등을 몇 차례 세 개 두드리며 말했다. "지금 2시간은 절대 자면 안 돼요. 숨 크게 쉬고, 기침도 하셔야 해요." 마취와 수술 탓에 숨을 쉬는 기도(숨길)의 섬모운동이 느려지고 폐포가 눌려 붙으면 폐렴 같은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환자를 위한 설명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엔 너무 힘들고 지쳐, 이해보단 원망이 먼저 앞섰다. 마음속으로 수간호사 선생님이 밉기까지 했다.
그래도 꾹 참고 비몽사몽 한 채로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며 2시간을 간신히 버틴 뒤 그러고 나서야 겨우 잠에 들었다. 너무 잠들고 싶었어서 오랜 시간 잠에 들 줄 알았는데 2시간도 채 안 돼 수술 부위의 극심한 통증에 눈을 떴다.
배에 연결된 배액관은 칼로 찌르는 듯했고, 명치에서 배꼽까지 이어진 15cm 수술 자리는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으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누워 있는 것도 힘들고, 그렇다고 움직일 힘도 없었다.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해도 너무 아파 숨이 저절로 참아졌다.
간호사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해 주셨지만 맞긴 맞은 건가 싶을 정도로 고통은 계속됐다.
어머니께 부탁드려 침대를 비스듬히 세웠고 그 상태로 등을 기대니 숨을 쉬기는 한결 편해졌다.
진통제 효과가 슬슬 돌기 시작한 걸까. 칼로 찌르는 통증은 덜했지만 계속 앉은 채로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수술을 마친 첫날밤은 정말 지독하게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