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뒤에 더 큰 고통
수술 후 균검사에서 세균이 검출됐다. 전염 가능성이 있는 균이라, 나는 보험 적용을 받아 6인실 외과병동에서 1인실로 옮겨졌다. 1인실은 마치 드라마 속 병실 같았다. 넓은 공간에 환자 침대는 단 하나뿐이었고, 전동으로 높낮이와 등받이를 조절할 수 있었다.
6인실에서는 환자와 보호자를 합쳐 최대 12명이 작은 냉장고 하나를 나눠 썼고, 화장실도 복도 끝 공용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하지만 1인실에서는 큰 냉장고를 혼자 쓸 수 있었고, 병실 안에 화장실과 샤워 부스가 따로 있었다. 보호자 침상은 없었지만, 창가 쪽에는 넓고 푹신한 쇼파가 있어 부모님이 딱딱하고 좁은 보호자 침대 대신 편하게 쉴 수 있었다.
그곳에 있는 동안, 개복 부위의 통증은 여전히 극심했다. 움직이기는커녕 기침조차 힘들었다. ‘방귀가 나와야 밥을 먹을 수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하루가 지나자 의료진이 식사를 해도 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거의 먹지 않았다. 앉아 먹는 것도 힘들었고, 대변을 보려면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지금 몸 상태로는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되면 수술 부위 소독을 받고 항생제를 맞는 게 하루 일과였다. 1차 항암은 수술 전에 이미 끝났고, 원래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수술이라는 변수가 생겨 휴식기에도 집에 가지 못한 채 병원에만 있어야 했다.
1인실 생활 5일째, 내 몸에서 균은 더 이상 검출되지 않아 다시 다인실로 옮겼다. 이번에는 7층 외과병동이 아닌 8층 혈액종양내과였다. 그런데 그날, 소변줄을 뺐던 성기가 심하게 부어올라 비뇨기과 교수의 협진이 이뤄졌다. 회진을 온 교수님은 상태를 보더니 “지금 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른 병실로 옮길 시간도 없이, 커튼만 친 채 내가 누운 침대에서 처치가 시작됐다. 부종은 요도에 소변이 남아 생긴 울혈 때문이었다. 전공의는 소독을 마치고 부풀어 오른 성기를 두 손으로 눌러 압박했다. 살짝만 건드려도 아팠는데, 세게 누르니 온몸이 경직됐다. 고인 소변과 혈액을 빼내는 동안, 나는 두 주먹을 꼭 쥐고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고통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부종과 협착을 막기 위해 다시 소변줄을 넣어야 했는데, 응급 상황으로 마취 할 틈도 없이 바로 진행됐다. 그것도 굵기 18Fr(지름 약 6mm)의 카테터였다. 요도구멍을 억지로 벌려 밀어 넣는 순간은 고문과 다를 바 없었다.
송곳으로 요도를 찌르는 듯한 통증, 전립선과 요도괄약근을 지나 길게 밀려 들어가는 감각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온몸을 비틀며 버텼고, 환자복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침대 시트까지 축축하게 젖어버렸다. 소리를 지르고 그만해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다른 환자들이 있었고, 눈앞의 의사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받았던 골수검사도 힘들었고,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C-line 삽입도 있었으며, 15cm를 개복하는 수술까지 겪었다. 하지만 이 시술만큼은 차원이 달랐다. 마취도 진통제도 없이, 부어오른 성기에 굵은 소변줄을 넣는 더 큰 고통이 남아있을줄은 몰랐다.
그날의 고통은 시간이 지나 흐릿해졌지만, 시술 후 젖어버린 시트의 차갑고 축축한 촉감만큼은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