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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달만의 첫 퇴원

천공성 충수염에 의한 복막염

by 선옥

1차 항암치료는 끝났지만, 수술과 후유증 때문에 퇴원하지 못한 채 병실에 머물고 있었다.


혈액종양내과, 외과, 비뇨기과 세 분의 교수님이 매일 회진을 오셨지만, 더 이상의 시술이나 처치는 없었고 그저 내 몸 상태를 지켜보는 정도였다. 비뇨기과 시술 이후로 상황이 더 악화되지는 않았지만, 몸 속 염증 때문인지 늘 미열이 있었고 크고 작은 오한에 시달렸다.


보통 개복 수술 후 실밥은 1주일쯤 지나면 풀지만, 나는 스테로이드와 항암치료를 병행해 회복이 더뎌 2주 뒤에야 풀기로 했다. 그동안 실밥은 배를 땡기며 허리를 제대로 펴기도 힘들게 했고, 몸을 일으켜 세우면 실밥이 몸을 당겨 통증에 시달려 대부분의 시간을 침상에 누워서 보냈다. 밥도 잘 먹지 못해 주사로 영양제를 맞아 식사를 대신했고, 화장실을 가는 것도,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렇게 수술 후 11일째 되던 날, 드디어 퇴원을 할 수 있었다. 물론 3일 뒤 다음 항암 사이클을 시작해야 해 재입원을 해야 했지만, 2월 17일 응급실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나가는 퇴원이었기에 설렘이 가득했다.


퇴원하기 전, 오른쪽 가슴에 심어두었던 중심정맥관을 제거했다. 힘들게 심었던 기억 때문에 빼고 싶지 않았지만, 2개월 이상 사용하면 염증 위험이 크다며 교수님께서 단호히 말씀하시자 더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다행히 삽입 때와 달리 제거는 주사 바늘을 빼듯이 가볍게 쑥 빠졌다.


교수님은 관을 제거하며 수술 조직검사 결과를 알려주셨다. 항암제 부작용이 아니라 "천공성 충수염에 의한 복막염" 때문이라 했다. 그래서 항암 프로토콜을 바꾸지 않고 예정된 치료를 그대로 이어갈 수 있었다. 만약 백혈병에 걸리기 전에 충수염이 생겼다면 혹은 최소한 백혈병 치료를 마친 뒤 발병하였다면 이렇게 큰 수술로 번지지 않았을 텐데.. 어쩜 타이밍도 이런지 앞으로 이 수술로 인해 항암의 프로토콜은 변하지는 않았지만 이 수술로 인해 앞으로 남은 나의 병원생활에는 큰 변화가 찾아왔다.


수술 후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누워만 있어 활동량이 줄었는데 사용하던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끊자 온몸의 근육과 살은 다 빠져 체중이 43kg까지 내려갔다. 살이 없어 앙상해진 엉덩이는 앉아있는것 조차 아려왔고 두 팔보다 가늘어진 다리로는 부모님의 부축 없이 걷기도 힘들었다. 이렇게 얇아진 팔과 다리와 정 반대로 얼굴과 배는 빵빵했다. 봄이였지만 옷으로 몸을 가리고 있어 앙상해진 몸은 보이지 않았고 빵빵해진 얼굴과 볼록 튀어나온 배 그리고 모두 빠져버린 나의 머리카락은 내 모습을 영락없이 ET처럼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가슴에 달려 있던 관도 뺐고, 두 달 가까운 병원 생활 동안 쌓였던 짐들도 부모님이 정리해 주셨다. 몸은 지쳐 있었지만 마음만큼은 한결 가벼웠다. 퇴원 수속을 밟으며 함께 지냈던 환자분들께는 “제가 돌아오기 전에 꼭 퇴원하시길 바랍니다”라 인사드렸고, 간호사 선생님들께는 “3일 뒤에 다시 뵙겠습니다”라며 웃어 보였다.


병원을 나와 집으로 향하기 전, 나는 부모님께 부탁드려 어릴 적부터 다니던 성당 감실에 잠시 들렀다. 집에 가기 전, 그 자리에서 짧게나마 감사기도를 드렸다. 이렇게 다시 걸어나올 수 있게 된 것, 다시 일어서게 해주심에 대한 감사의 기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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